통독 Epilogue
하늘 이야기/딴지묵상

통독 Epilogue

by letter79 2024. 9. 11.

2024년 3월 11일부터 9월 5일까지 6개월의 통독을 마쳤다. 실은 부끄러운 통독이다. '듣다보면 성경읽기'라는 새번역 유투브 읽기를 헬스장에서 한시간 운동하면서 배경삼아 틀어두었다는 표현이 맞다. 밀리기도 엄청 밀려가면서 마치는 날 같이 마치려고 후반부에는 진도 빼느라 애먹었다. 이상하게 끝까지 해본다 하는 오기같은게 이번엔 있었다.

은근 회의적이고 질문하기를 좋아하는 기질을 타고난 나는 성경을 빠르게 읽는것이 워낙 어려웠었다. 읽다가 무신론자가 되버릴것 같은 말도 안되는 구절을 만나면 그만 걸려 넘어지듯 진도가 나가질 않고 내빼기 일수다. 가끔 그러다가 문득 기가 막히게 나를 후벼파는 구절을 읽다 감전되는 순간도 만나기도 한다. 그러면 또 멈춰서듯 곱씹어야 하기 때문에 그렇다. 그래서 나는 QT가 좋았다. 하지만 큐티를 하다가 성경의 구성을 보는 큰 맥을 잡고 싶기도 하고 배경을 알고 싶기도 했다. 정말 어렵기 짝이 없는 성경을 누가 세계에서 제일 많이 팔린책이라 했던가. 성경을 읽고 은혜받는 사람이 있다는데 나는 그렇지 않을 때가 더 많았다. 가끔은 물음표가 너무 많아서 제대로 느낄수가 없었다.

그러다 교회에서 40여명이 카톡방을 열어 같이 통독을 한다는데 슬쩍 끼여들어봤다. 나의 회의하고 질문하는 신앙을 이해해주고 공감해주고  또다른 뜨거움이라며 귀하다 여겨주시는 장로님 부부가 매일 오전 7시정각에 통독 분량에 맞게 올려주시는 자료를 보고 유레카! 했다. 특히 평신도 부부가 성경읽기를 앞장서서 이끌어주신 다는 부분도 좋았다.  그 자료집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서적과, 강해설교 파일, 논문 등 다양한 자료를 수집하신것인데,  다양한 질문과 답변을 통하여 차곡 차곡 모아진 A4 로 703page, 단행본이었다면 대략 1500page 분량을 넘어서는 어마어마한 자료였다. 사실 이 자료가 너무 방대해서 신약의 경우에는 읽는 통독의 양과 설명의 양이 거의 비슷할 정도인 날도 있었다. 다양한 입장의 해석이 치우쳐지지 않게 소개되어 있었기에 종종 머리가 쥐가 날 정도로 지적인 자극이 있는 자료였다. 그러나 뭔가 인강프리패스를 끊은 느낌으로 우리교회 홈페이지에 게시되어 있기 때문에 진도만 먼저 뺐고 나중에 찬찬히 돌려봐야겠다 싶다. 물론 마음에 들지 않고 오히려 물음표인 해석들도 있었지만 평소 가려운곳이 기대이상으로 많이 해소되었다. 

잠시 그 장로님이 적어주신 통독 에필로그 앞부분을 소개한다.

평신도는 홀로 성경을 읽을 때마다 어려움에 봉착합니다.
첫째는 단어와 문맥의 의미를 이해하기 어려울 때가 많습니다.
둘째는, 성경의 이야기들은 신,구약 상호간에 또는 다른 구절들과 상호연관되어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어느 한 본문만을 읽고 그 진의를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한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어려움이 성경을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으로 여기는 관행을 당연시하는 풍조로 이어지는 현상을 너무나도 안타깝게 여겨왔습니다. 성경을 펼칠 때마다 쉽게 이해하고 읽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보조교재의 필요성을 절감한 지 십여년만에 그루터기(통독카톡방 이름임)를 만날 수 있게 된 것은 너무나도 감사한 기회였습니다. (이하 생략)

종종 사진자료와 그날 읽는 통독과 맥을 함께 하는 배경음악(팝송도 많았음)도 있었고 성경문제도 나갔었는데 톡방에 답변이 달리는 그 톡들을 매일 아침에 보면서 진도를 따라잡지 못해 그 대화에 끼지 못하는 외로움을 꾹 참아보기도 했던 날들이었다. 꾹 참고 이번엔 무슨일이 있어도 끝까지 간다 하면서 오기로 6개월을 지나왔다. 그래서 마치는 날은 같이 마쳤다. 부끄러운 통독이지만 완료를 했다.

내가 마무리하는 소회에 그런 표현을 적었었다. 통독 내내 끝없이 내안에 무신론자와 독실한 신앙이 함께 담겨있는 느낌이 공존하는 시간이었다는 표현이었는데 그 표현에 답장을 장로님이 이렇게 달아주셨다. 그 답장이 나를 블로그 글을 쓰게 만들었다.

독실한 신앙과 무신론자, 전혀 반대되는 진영을 지칭하는 표현이지만, 왠지 극과 극은 통한다는 단어처럼 무언가 이어지는 듯한 느낌의 단어로도 다가옵니다. 통독지기의 소임을 다했다고 불과 6개월만에 믿음이 더욱 더 신실해졌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습니다.
그저 신앙이력에 또 한 줄 추가된 것에 불과한 것은 아닌지?
통독을 마쳤다고? 그럼 믿음은 또 뭐지?
이처럼 믿음은 사람의 심령에 끊임없는 의문부호를 가지게 하는 것입니다.
불가능성의 무게감을 너무나 버거워하기 때문은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음을 버리면 삶이 너무나도 허망해질 것 같은 두려움은 더 커질 것 같습니다. 집사님의 회의하는 믿음을 응원합니다.

이 문자를 소개하고 싶어서 보고 이 에필로그를 다시 적고 싶어진 것이다. 이번 통독이 종교적 열심을 드러내는 하나의 도구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통독 마치니 뭐가 좋은지는 잘 모르겠는데 여기 블로그에 그래도 시가서까지는 서평비슷한걸 올리는 과정이 유익했다. 성경이 나를 읽어내려가는 걸 시가서까지는 써보았는데 예언서부터는 학기말과 방학 일정으로 도저히 그걸 못한 것이 아쉽다. 딴지거는 성경 이야기를 계속 써봐야겠다. 달고 오묘하다는 그 말씀의 단맛이 언젠가 느껴질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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