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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이야기/딴지묵상

성경통독 - 수, 삿, 룻

by letter79 2024. 4. 25.

모세오경을 마치고 여호수아와 사사기를 마쳤다. 여기는 통독이 전혀 지루할틈이 없다. 전쟁 드라마에 막장 드라마에 각종 사람들이 사람 냄새를 풍기는 갖은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이야기로 꽉 차있는 부분이라 의지를 발휘해서 읽지 않아도 되긴 하지만 성경난제인 '가나안 정복 전쟁(헤렘)은 정당하고 사실인가'와 '하나님은 선하신가?' 라는 질문은 꿈틀꿈틀 올라온다.
 
신성 모독인듯 한 질문은 나만의 뜨거움이라 단번에 풀리지는 않으나 모든 질문은 답변하지 않으셔도 어떤 순간에는 '아하!' 하는 설명 대신에 깨달음으로 다가오기 때문에 물음표를 가지고 나아가려고 한다. 성경난제를 사람이 모두 풀수는 없다.
 
여호수아는 '두려워하지말고 담대하라 너와 함께 한다'라는 응원에서 시작해서 피로 물든 전쟁이야기로 가득차있다. '헤렘' (진멸)이라 표현되었지만 여호수아서는 역사적 헤렘은 아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여호수아가 온 땅, 곧 산지와 남방과 평지와 경사지와 그 모든 왕을 쳐서 하나도 남기지 아니하고 무릇 호흡이 있는 자는 진멸(헤렘)하였으니 이스라엘의 하나님 야훼의 명하신 것과 같았더라(수 10:40)." 라고 하지만 사사기에서는 모두 남아있다. 헤렘은 '객관적인 역사'라기 보다 이스라엘 그 백성들에게 명확하게 명하신 '역사 속의 교훈'으로 봐야하지 않는가 싶다. 어찌보면 인종척결을 정당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헤렘]을 사용했다는 이야기가 여호수아를 삐딱하게 읽게 한다. 전쟁광 처럼 보이고 특히 여자든 아이든 모두다 죽이라고 하셨다니...거룩한 공동체로 거듭나기 위한 이스라엘 공동체 자체에게 주신 명령이지 누가 누굴 인종청소하기 위해 주신 명령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읽는다. 물론 가나안 사람들이 히틀러 같은 잔인한 짓을 저지른 악의 전형이라면 정의로운 심판이 맞고 이스라엘은 정의로운 심판의 도구일 뿐이다. [헤렘] 의 대상은 물론 가나안이기도 했지만 이스라엘 안에 있는 악의 모습이기도 하니 정복전쟁을 읽고 해석할 때는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할 것 같다.
 
여호수아에서 나의 마음에 또 하나 찝찝했던 사건이 있으니 그것은 '아간'의 사건이다. 아간은 공동체에 큰 잘못을 저질렀고 그것을 옹호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는 죄를 지었으나 고백을 했고 하나님 앞에 만약에 용서를 구하고 회개하며 하나님 앞에 나아갔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과연 죄 그 자체만으로 사람이 사람을 돌로 쳐죽여도 되는걸까? 잠시 궁금해졌다. 아간의 모습은 평생 나의 모습 안에도 얼마나 많았을까 생각해보면 단순히 그를 저격하는 시선만으로 끝나지지 않는다. 
 
10장에서는 태양이 멈추기도 하고 자전이 멈추기도 하고 우박으로 사람이 왕창 죽기도 하는 기상천외한 일들이 나오는 부분이 있다. 여호수아가 기도를 해서 그렇게 하셨는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는데 하나님이 간섭하셔서 초월적인 일이 일어날수도 있다 정도로 지나가고 과학적으로 증명하거나 접근해서는 안될 부분이라고 생각했다.
 
땅을 분배하면서 눈여겨 본 부분은 갈렙 부분이다. 읽으면서 그 호기로운 노년기의 신앙고백에 감탄하면서 읽었다. 주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기만 한다면 나는 그들을 쫓아낼 수 있다고 말하는 그를 어찌 축복하지 않을수 있을까 하면서..
 
여호수아는 모세보다 짧게 살았고 헤렘을 수행하느라 엄청 고생을 했던 것 같다. 여호수아는 다른 신들을 섬기는 가나안 족속과 섞여 살면서 그들에게 동화되지 말고 '하나님만' 가까이 할것을 강조하는 고별사를 한다. 섞이고 정체성이 흐려질 때 발생하는 모든 일들을 그는 내다 보면서 이스라엘 자체도 언약을 어기고 다른 신을 경배하면 그 좋은 땅에서 망하게 된다는 경고를 한다. 이 부분을 보면서 선민의식이 착각임을 말하는 성경 구절이 얼마나 많은지 새삼 깨닫는다.
 
사사기는 스펙타클한 인간들의 이야기로 가득차서 읽는 재미가 가득했던 책이다. 가나안에 얼마나 고생해서 들어갔는데 염려했던 이스라엘 1,2세대가 역사속으로 사라지자 마자 이들은 가나안에 그대로 동화되고 우상숭배 문화를 수용한다. 그리고 완전히 진멸하라고 하시는 처음의 명령을 수정하시는 대사가 나온다. 사사기 2:20절에서 말이다. 그러니까 언약도 어기고 순종하지 않는 너희들 앞에서 다른 민족을 몰아내지 않겠으며 그들의 조상에게 가르쳐준 그 길을 충실히 걸어가는지 시험하여 보겠다는 내용이었다. 이미 가나안 전쟁 중에도 그들과 결혼하여 바알이랑 하나님을 혼합하여  섬기고 있는 그들에게 이제는 이방민족을 반면교사 삼기 위해 두셨다는 하나님의 수정된 계획이 보인다.
 
기드온의 300용사 이야기를 이번에 읽었을 때는 기드온이 이렇게 별거 아닌 인물이었나 하면서 읽었다. 그들이 대단한것이 아니었고 기드온도 그냥 하나님이 사용하신 도구의 리더일 뿐이라는 해석을 하면서 읽었다. 그 이후에 사람은 계속 타락하고 답습하고 말씀에서 멀어지면서 혀를 내두르고 인상을 펼 수없는 암울한 역사가 반복된다. 그 중에도 사사는 계속 보내지고 있었고 사사도 인간이었기에 허물은 있었지만 가끔은 영웅적인 존재였걸 보면 하나님은 사사를 통해 일하시고 계셨던 것 같다. 허나 왕이 없었다는 이야기가 반복해서 흐른다. 봉투기법이라는데 왕이 없다로 시작해서 왕이 없어서 이 지경이다 이렇게 마무리가 되는 사사기의 반복적인 이야기에서 문득 그 왕이 진짜 사람들 사이의 왕이 아니라 인생의 주인이시고 온 세상의 주인이신 왕되신 하나님이 그들 안에 없었다로 읽힌다. 이렇게 왕이 없으면 하염없이 허물어지는게 인간이구나 싶었다. 처음 글 쓸 때 여호수아와 사사기에서 두가지 질문에 대해 글문을 열었었다. 첫째 질문은 헤렘은 과연 정당한가 였고 두번째 질문은 하나님은 선하신가 였다. 헤렘 이야기는 길고 긴 이야기라 정리가 더 되어야 할 것 같으나 두번째 질문은 선하시다라는 답을 얻은 것 같다. 하나님은 선하시다. 그래서 계속 읽으려고 한다.
 
룻기는 정말 재밌는 책이다. 하나님이 말하지도 않고 하나님이 이러이러하셨다는 내용도 하나도 없다. 그냥 사람이야기에고 로맨스와 감동이 가득한 휴머니즘 그 자체이다. 보아스에 반하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이 보아스는 아버지인 가나안으로 보낸 정탐꾼 살몬이 기생 라합을 선택하고 한 결혼에서 낳은 아들이 아닌가~ 아 멋진 믿음의 두 부모 밑에서 자란 하난님의 성품을 담은 사람이다. 사사기에서 고구마먹듯 답답한 마음이 여기 룻기에서 나온 보아스를 보면서 풀린다. 보아스는 정말 헤세드의 사람이었다.〈헤세드〉가 사람 사이에서 나타날 때에는 ‘친절’의 형태이지만, 하나님이 사람에게 베푸실 때에는 ‘긍휼’로 나타난다고 통독 이끔이 장로님이 적어주신 부분이 좋았다. 나오미는 내가 즐겁게 시청했던 [우리들의 블루스]라는 드라마의 김혜자의 인생이 떠올랐다. 모든 걸 다 잃어버린 그녀의 얼굴과 삶을 떠올리며 나오미를 읽었다. 다 잃어서 영혼이 망가져버린 김혜자가 만약 나오미처럼 헤세드를 경험한다면 어떨까 하는 상상을 하면서 읽었다. 헤세드는 명사가 아니라 동사라고 설명해주셨듯이 헤세드를 매일 살아내고 싶다고 두주먹 불끈 쥐면서 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