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로동 주식 클럽
소설의 형식을 빌려 주식 중독 치료 과정을 하나씩 살펴보며 그에 얽힌 등장인물들의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풀어가는 하이퍼리얼리즘 투자 픽션이다. 투자 때문에 울고 웃었던 모든 개미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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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제목만 얼핏 보면 주식과 관련된 정보를 제공하는 책 같기도 하지만 실은 소설의 형식을 빌려서 주식 중독 치료 과정을 다루는 내용이다. 한때 주식중독에 빠졌던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인 작가가 쓴 책이고 하이퍼리얼리즘 투자 픽션이라고 소개하는데 실제로 이게 픽션일까? 하는 생각이 들만큼 일상적인 현실을 생생하고 완벽하게 그려내고 있다.
우리 가정에도 관련된 일이 있어서 보게 되긴 했다. 힘들지만 회복과 관리의 시간을 보내고 있고 전문가를 만나 알게 된 위안이 된 사실은 어느 가정이나 연결된 누군가에게 빚투, 영끌, 주식 중독 사연은 있었다는 사실이다. 지갑만 털리는게 아니라 멘탈이 탈탈 털리고 가족도 깨지고 곡소리가 들린다. 혹 그런 지인이나 가족이 전혀 없는 사람이 봐도 이 책은 재미있다. 넷플릭스 드라마 보는듯 몰입감이 장난이 아니다. 책을 싫어하는 동료에게 보라고 줬는데 덥석 앉아읽더니 빌려갔다. 주식이 주인공이 아니라 욕망을 관리하는 현대인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주식은 결국은 욕망을 반영한다. 정말 똑똑한 사람들마저 이런 뻔한 함정에 넘어가는 이유는 욕망, 그리고 불안 때문이라고 소개한다.
더 안락한 삶을 꿈꾸며 부자가 되고 싶은 갈망, 주위 사람들보다 뒤쳐지면 안된다는 조급함이 우리의 판단을 흐린다. 평범한 회사원이 몇년치 연봉을 한방에 벌었다거나 1년만에 100억 자산가가 되었다는 유투브 썸네일은 실제가 아닐 수도 있다. 나는 이 책을 보면서 헤아리고 싶기도 했다. 그렇게 그 함정에 넘어가는 심리를 말이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중독에서 빠져나와 회복할 수 있을까하는 답이 있을까 싶었다.
'어떤 일에 있어 나쁜 결과를 충분히 예상하면서도 반복적으로 그 행위에 집착하는 현상'을 중독이라고 한다면 주식에 중독된다는게 맞는 말일까 책 초반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첨엔 나도 주식중독은 너무 주식투자를 부정적으로 보는 시선이 아닌가 싶긴 했지만 그 심리가 도박과 너무나 유사하다는데서 고개가 끄덕여졌다. 몰래 빚을 내어서 영혼까지 끌어모아 주식에 투자하는 심리는 도박이다. 나는 운이 좋으니 그 정도의 낮은 승률(애처로운 승률)이면 충분하다는 긍정격화의 인지오류와 이기는게 아니라 그냥 재밌어서 한다는 이유, 그리고 도파민이 과다하게 분비되어 이미 보상회로의 변형이 일어난 상태라고 책에서는 설명한다. 뇌 구조가 정상인과 다르다는 것인데, 이 설명에 공감이 갔다. 초반에 투자수익을 봤던 그 강렬한 쾌감이 기억 저장소인 해마체에 반복적으로 각인이 되어 실패나 두려움이 아닌 즐거움과 쾌락만 떠오른다고 한다. 결과는 크게 상관이 없어지고 수익을 보든 말든 그저 그 행위 자체에 중독이 된다고 하는 설명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책에서 그 몰래 빚투,영끌 주식 투자하는 사람의 심리를 설명한 부분을 잘 적어두었다.
손실가능성을 무시한채 대박, 상한가, 폭등 같은 단어에 뇌를 지배 당하고 위험한 투자를 하면서 두려움과 분노 공포심을 관장하는 편도체는 마비되어 전두엽의 도파민으로 마비된 그런 상태가 되어버린다. 본전에 대한 집착으로 많은 투자자는 손실을 보면서도 '이것만 찾고 다시는 주식 안해'라고 투자를 계속 한다. 반복적인 자책으로 불안이 일정 수치를 넘어서면 전두엽은 통제를 잃고 충동적으로 날뛰는데 그 상태에서도 출처도 불분명한 수많은 지라시와 뉴스를 보면서 '이건 100퍼 작전주야, 함정이야' 의심하면서도 잠깐 넣었다가 10퍼센트만 먹고 나오면 안전하지 않을까 하는 근거없는 망상에 빠진다. '지난번엔 운이 없었을 뿐이야. 이번엔 잘 될거야'라는 인지오류에 다시 빠지는 것도 과도한 불안이 이성과 합리적인 의심을 잠식해 버렸기 때문이다.
부자는 되고 싶지만 투자 공부는 너무 어렵다. 세상에 숨겨진 지름길, 기적같은 비법이 존재해서 흙수저인 나의 삶을 극적으로 바꿔주길 빌고 싶다. 처음 한두번 주식이 내게 보여줬던 달콤한 환상, 손에 잡힐 것만 같은 반포 아파트, 파이어족, 조기 은퇴 같은 것이 먼지 처럼 사라진다.
이 책은 가상의 오픈채팅방에 주식중독으로 삶의 많은 부분이 망가진 5명이 모여서 서로를 치유한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 이해하고 변화하는 이야기다. 그런 설계를 나는 기본적으로 좋아하는 편인데 이 책은 쭉 그렇게 연결이 이해를 이해가 변화를 이끌어 나간다. 가명을 쓰며 서로가 누군지 노출시키지 않은 그런 편안한 오픈채팅방에서도 그렇게 치유는 일어난다. 가명이어서 누가 누군지 누가 여자고 남자인지 좀 헷갈리긴 한다. 5명을 잘 상상하며 쫓아가면서 읽어야 한다. 몰입감도 꽤 있다. 결국엔 이 다섯명은 만나게 되고 중요한 대화를 하게 된다. 나는 그 대화를 소리 내어 읽어보았다. 감동적인 대화다.
가장 맘에 드는 장면은 "잘 들으세요. 우리는 상처받은 누군가가 아니라 그저 오늘 행복해지고 싶은 사람일 뿐이에요. 과거가 아니라 오늘을 사는 사람들, 잘될지 모르지만 최선을 다하고 싶은 그런 보통 사람들이요" 그렇게 말하면서 실명을 서로 오픈 하는 그 장면이다. 누군가에게 힘이 되는 존재는 그 존재가 뭐 대단한 존재라서가 아니라.. 나랑 같은 아픔을 겪었던 사람이다. 그 사람의 한마디와 공감은 사람을 살린다. 상처입은 치유자가 된다. 언젠가 우리 가족에게 벌어진 일도 상처입은 치유자로서 쓰임받기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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