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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영화, 음악 이야기

H마트에서 울다/미셸 자우너/문학동네

by letter79 2023. 12. 14.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89621076

 

H마트에서 울다

그래미 어워드 후보에 두 번 오른 인디 팝 밴드 재패니즈 브렉퍼스트의 가수이자 기타리스트인 미셸 자우너의 가슴 뭉클한 성장기를 담은 에세이. 출간 즉시 미국 서점가 베스트셀러에 올랐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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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모임에서 이 책을 선정해서 읽기 시작했다. 도서관에 책을 찾아보니 싹 예약이 걸린 핫한 책이었다. 버락 오바마 추천, 2021년 아마존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기도 했었던 화제의 베스트셀러라고 했다. 옮긴이의 말을 빌리자면 이 책은 영화<미나리>의 모녀 버젼이다. 딸의 시선으로 어머니의 삶을 돌이켜본 이민자의 이야기 그것이 바로 이 책이다. 예술가가 된 딸의 시선으로 1세대 이민자인 어머니의 삶을 되짚는 이야기

 다들 보는 책이니 덥석 내용을 모르고 읽기 시작했는데 결국은 엄마의 죽음을 다룬 책인 것을 알았다면 나는 이 책을 집어 들지 못했을것이다. 나는 유달리 엄마에게 의존적인 마마걸인데다가 엄마가 죽는 내용의 드라마 장면이나 영화 장면을 깊이 몰입하지 못한다. 언젠가 나에게 닥칠 일 이겠지만 정면으로 그 슬픔을 마주할 용기가 없다.

 

1/3정도 읽었을때 독서모임을 했고 엄마와의 애착 이야기와 숙제처럼 풀어야할 언젠가의 헤어짐 이야기를 나누었었다. 그리고 나서 나머지 부분을 읽을까 말까 고민하다가 이거 내가 한번 용감하게 읽어보자 하면서 진도를 나갔다

작가는 엄마와의 아주 사소하고 자잘한 에피소드들을 H마트에 가면서 또 한국음식을 만들면서 회상한다. 그 회상이 얼마나 정확하고 선명한지 놀랍다. 대단한 기억력이고 표현도 생생하다. 

 

읽으면서 나는 우리 엄마를 생각하고 떠올렸다. 아침 마다 우리집에 와서 아들의 아침을 챙겨주시는 엄마를 떠올렸다.  독감에 걸려서 일주일 학교를 못가고 있는 아들을 돌보시고 계신 건강하신 우리 엄마.. 어릴적 부터 엄마는 나에게 불안 반 사랑 반 이렇게 주고 계셨다. 엄마의 불안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나에게 전해졌는데 그것이 어디까지가 불안인지 사랑인지 구분을 짓기가 어려웠다. 나는 그런 엄마를 작가와 함께 떠올리고 있었다. 작가가 나중에 엄마의 죽음 이후에 한국으로 와서 이모와 지내는 시간을 생각하며 나는 내 동생을 떠올렸다. 우리 엄마가 돌아가시면 우리 엄마를 그리워하고 애도하는 시간이 분명히 존재할텐데 그 시간을 함께 쓸 동지가 있는 셈이었다. 작가는 외동이라 형제가 없어서 그것을 이모와 함께 해냈다. 이것만으로도 나는 내 동생과 잘 지내야할 이유가 충분하다. 같이 엄마를 그리워하고 애도할 사람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모르겠다. 이 책을 쓰면서 아마 작가는 충분히 애도하고 충분히 회복되고 있을 것 같다. 그런 면에서 읽는 독자도 작가도 행복해지는 책이다. 물론 슬픈 책이고 특히 엄마가 병상에서 많이 힘든 시기를 보낼때의 이야기는 너무나 마주하기 힘든 장면이기도 했다. 허나 모두 완독을 하고 나니 잘 읽었다는 생각이 든다. 예습 처럼 한번 숙제를 한 느낌이랄까.. 허나 그 그리움과 슬픔은 자신은 없다.

 

읽다가 아름다왔던 한 페이지를 여기에 적어둔다. 

371페이지. 

[H마트에서 울다 371페이지~] 
엄마는 나의 대리인이자 기록 보관소였다. 엄마는 내 존재와 성장 과정의 증거를 보존하려 갖은 노력을 기울였다. 내 모습을 순간 순간 포착하고, 내 기록과 소유물을 하나하나 다 보관해두면서. 엄마는 나의 모든 걸 기억하고 있었다. 내가 태어난 때, 결실을 맺지 못한 열망, 처음으로 읽은 책. 나의 모든 개성이 생겨난 과정, 온갖 불안과 작은 승리. 엄마는 비할 데 없는 관심으로 지칠 줄 모르고 헌신하면서 나를 지켜보았다.
 엄마가 사라지고 나니 이런것 들을 물어볼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기록되지 않은 일은 엄마와 함께 죽어버렸으니까 한낱 기록과 내 기억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이제 엄마가 남긴 표식을 단서로 나 자신을 이해하는 일은 오롯이 내 숙제가 되었다. 이 얼마나 돌고 도는 인생인지, 또 얼마나 달콤쌉싸름한 일인지. 자식이 엄마의 발자취를 더듬는 일이, 한 주체가 과거로 돌아가 자신의 기록 보관인을 기록하는 일이.
 나는 발효가 통제된 죽음이라고 생각했다. 배추는 놔두면 곰팡이가 피고 부패한다. 썩어 못 먹게 된다. 하지만 배추를 소금에 절여두면 부패 과정이 완전히 달라진다. 설탕이 분해 되면서 젖산을 만들어내 배추가 썩지 않게 되고 그 과정에서 탄산가스가 나와 절임이 산성화된다. 그렇게 해서 시간이 지날수록 색과 질감이 변하고, 톡 쏘는 새콤달콤한 맛이 나게 된다. 요컨데 발효는 시간 속에 존재해 변화한다. 그러니 발효가 완전히 통제된 죽음인 건 아니다. 사실상 새로운 방식으로 생명을 누리게 되는 거니까.
  내 기억을 곪아터지게 놔둘 수는 없었다. 트라우마가 내 기억에 스며들어 그것을 망쳐버리고 쓸모없게 만들도록 방치할 수는 없었다. 그 기억은 어떻게든 내가 잘 돌봐야 하는 순간이었다. 우리가 공유한 문화는 내 심장 속에, 내 유전자 속에 펄떡 펄떡 살아 숨쉬고 있었다. 나는 그걸 잘 붙들고 키워 내 안에서 죽어버리지 않도록 해야 했다. 엄마가 가르쳐준 교훈을, 내 안에, 내 일거수일투족에 엄마가 살아 있었다는 증거를 언젠가 후대에 잘 전할 수 있도록. 나는 엄마의 유산이었다. 내가 엄마와 함께 있지 못한다면 내가 엄마가 되면 될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