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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영화, 음악 이야기

학교의 시계가 멈춰도 아이들은 자란다(이수진,정신실/2019/우리학교)

by letter79 2019. 6. 26.

http://aladin.kr/p/12fP9

 

학교의 시계가 멈춰도 아이들은 자란다 - 열일곱 꽃다운친구들의 갭이어 이야기

‘꽃다운친구들’이 대학 입시를 위해 질주하는 급행열차에서 내려 1년의 방학을 보낸 무모한 도전기다. 청소년기의 삶에서 쉼이 주는 의미가 무엇인지는 물론, 어디로 가는지 방향을 생각하기보다 무작정 내달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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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서 마음에 남은 한 문장 

'아이를 살리는 것은 제 숨을 쉬게 하는 것이고, 제 장단에 춤추게 하는 것입니다. 일년 쉬는 것 역시 능사는 아니지만 적어도 자기 시간을 제 맘대로 써 보는 기회를 주는 것입니다.  채윤이도 저도 흔들리며 가겠지만 우리는 생명을 선택했습니다' 

나는 책 표지에 '열일곱 꽃다운 친구들의 갭이어 이야기'라는 표현 중 모르는 단어에 꽃힌 상태로 일단 이 책을 들었다.

갭이어가 뭘까? 찾아보니 학업을 잠시 중단하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흥미와 적성을 찾는 영국에서 1960년대에 시작된 움직임을 말하는 것 같았다. 흐름을 비슷하게는 전환학년제, 인생학교, 애프터스콜레 등의 생소한 단어들이 있었고 실은 나는 그것이 새롭진 않았다. 오딧세이학교라는 서울시교육청에서 만든 1년짜리 자유학년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지인을 따라 하자센터 구경하고 식사하면서 새로운 시도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던 적이 있다. 그 곳에서 일하는 그를 알고 지내다보니 교사의 시선으로 이러한 시도들을 보고 듣고만 했지 학부모의 시선을 경험한적이 없었던 터라 이 책의 내용이 궁금해졌었다.

무슨 프로그램이든 사람을 모집해야하니 이런 책은 아마 약간은 부풀려져있고 좋은 점만 나열했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삐딱하게 읽기 시작했다. 광고를 보듯 좀 한발짝 뒤에서 봤다고 해야하나.. 하지만 생각보다 과장되어 있는 부분을 찾기는 어려웠다. 아무리 시도가 좋다고 하나 대안교육은 꽃길이 아니라는 것은 대안교육에 자녀를 보내보았던 지인을 통해서 듣던 중이었다.

자녀를 홈스쿨링을 하거나 대안교육을 하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런 의문이든다. '저 아이는 자기가 원해서 저걸 하는걸까.. 그/그녀의 아들로 태어나서 다른 이들이 걷지 않는 길을 걷게 되는 것은 아닌가? 스스로 결정했을리가 없어 저런 길이 있다는걸 안다는게 신기해'  이 의문에 대해 아이가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을 지게 하는 '자기결정'을 다룬 부분의 이야기가 눈에 들어 왔다. 유치원생인 내 아들이 무언가 학원을 다니고 싶다고 할 때도 고민스럽던 지점이었다.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의논하고 합의하에 시작했다면 지속적으로 다니고 중간에 재미없어졌다고 바로 끊을수 없도록 하는 원칙을 세웠다는 부분은 이제 막 여러 예체능 사교육을 시작할까 기웃거리던 나에게 반가운 충고 였다. 기준 높으니 덥석 시작하지 않는다는 것! '자기결정'의 힘이 얼마나 강한지를 저자를 통해 배웠다. 결정을 위해 여백을 보장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에 대한 내용은 엄마인 나에게 큰 도전이 되는 부분이었다. 다른 엄마와 비교했을 때 찾아오는 자기비하와 두려움 그리고 다른 길을 걷는 외로움에 대한 내용을 특히 공감했다. 무장해제되어 읽어내려 가다 보니 책은 광고책이 아닌 꽃치너와 그의 엄마의 성장여정을 다루고 있었다.  꽃친프로그램만을 설명하는 것이 아닌 비슷한 고민을 가지고 아이를 키워나간 선배엄마의 좌충우돌 질문들이 책 속에 이곳 저곳 포진해있었다. 그 길을 선택하고 나서 "어차피 아쉽지 않을수는 없어 그러니까 그냥 아쉬워야지 그리고 내가 선택한 걸 열심히 해야지" 라고 말했다던 채윤이의 말은 그 어떤 부풀린 자랑보다 실감나게 느껴졌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만들기 회원으로 아이가 돌때부터 그런 강의 온라인으로 들으며 책도 사서보며 소신있는 엄마로 살고 있다고 자부했던 나는 앞으로도 자신있다고 생각해 왔었다. 하지만 엄마들 모임에서 단골주제인 사교육이야기가 나오면 나는 소신 있게 아이가 하고 싶어하는 것을 오래 기다리며 살피고 시작하겠다고 말하지만 내년에 학교에 들어가서 얘가 기죽으면 어쩌나... 자존감은 지킬 수준은 만들어줘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파고드는 건 공감 백배였다. 학교에 다니는 이상 어쩔 수 없이 아이는 성적으루 세운 줄 어딘가에 서야하고 내가 아무리 "공부 못해도 돼"라고 진심으로 격려해도 크게 위안이 되지 않을 순간은 올 것이라고 표현한 부분은 공교육 교사로서 엄마로서 진심으로 공감가는 부분이 었다. 과감히 그 곳을 벗어나는 선택을 통해 "우리도 행복할수 있을껴"라고 속닥속닥 이야기해주는 선배언니같은 친근함에 나도 잠시 설레였다.

꽃친의 자세한 프로그램 이야기들을 살펴보니 학교 생활을 통해서는 절대 불가능한 막막하고 모호한 숙제들이 눈에 띄였다. 저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대학입시용 설국열차에 올라탄 탓에 맘껏 사춘기를 겪어보지도 못하는 내가 만나는 중학생들이 안쓰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 열차에서 내려 꽃친을 한 채윤이는 가족이 있는 집으로 돌아와서 아기 때 보여주었던 그 자연스러운 표정을 보여주었다고 했을 때 엄마로서 참 행복하셨을 것 같다.  아무리 생각해도 진로를 찾기는 자기다움을 찾는 것인데 다짜고짜 여백없이 뛰면서 '자기'를 찾는 경우는 없다. 쉼을 통해, 여백을 통해 정해진 길 없는 지점에서 불안을 견디며  부모나 학습 코칭 선생의 장단이 아닌 '제 장단'의 춤을 출수 있게 만들어주는 것이 맞다고 여겨졌다.

읽으면서 내가 조금 불편하게 그러니까 아프게 읽었던 부분은 교사에 대한 부분이었다. 지금 까지 저자가 학교에서 만난 교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부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선생님과 학생의 인격적 관계는 찾아보기 어렵고 어른으로서 선생님 역할 또는 부재한다고 또박 또박 적혀있던 부분을 줄을 그으면서 괜히 아팠다. 억울하지 않고 아팠으니 이상하다. 나는 중학교 교사로 일하면서 요즘 젤 공들여야 하는 부분이 함께 살아가는 힘 그러니까 갈등을 조절하는 힘을 기르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학교폭력이니 왕따 문제니 하면서 점점 사회가 관심은 가지고는 있지만 어떻게 이 문제를 풀어야할지 대다수는 모르는 것 같다. 회복적서클을 통해 갈등을 전환하며 갈등안에 그냥 머물어도 보고 그러면서 얼마나 많이 성장하는지 가르쳐주고 싶다. 그걸 이 꽃친안에서 안내하고 있는 선생님들이 부러워졌고 관계 숙제를 찬찬히 바라보는 저자의 딸이 왠만한 어른들보다 훨씬 성숙해져가고 있다고 믿어졌다.

꽃친 프로그램에 대해 '한국형 게으름 청소년 백수의 하루살기'로 재미있게 정의한 부분은 참 솔직한 표현이었다. 과연 이 프로그램을 살아내는 아이들은 실제로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했는데 이 부분에 자세히 나와있었다. 이렇게 게으른 백수로 살아 내고 있는 아이와 부모의 이야기는 뜬 구름 잡는 인쇄된 교육과정이 아닌 연속극같이 그려지는 실제적인 데가 있었다.

무엇보다 입시행 설국열차에 아이를 태우지 않은 엄마로의 외로움이 자세히 그려진 부분도 내 모습과 겹쳐서 반가웠다. 많은 사람들이 가는 길에 묻어가는 것, 타고 가던 기차를 쭉 타고 가는 것이 편한 것은 사실일테다. 관성의 법칙을 거스르는데는 에너지가 많이 들긴 하지만 이 책의 제목 처럼 학교의 시계가 멈춰도 아이는 자란다. 아이가 산다. 아이가 춤춘다. 그 길을 먼저 가신 저자에게 박수와 응원을 보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