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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노트/끄적끄적

보건실 이야기 230317

by letter79 2023. 3. 17.

[오늘은 카페 사장님 만큼만 하자]


환자가 점점 늘고 있는 요즘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액자에 걸린 그 두번째 문장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내가 썼지만 대단히 이상적인 문장이다. 

-연약할 수록 귀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며 오늘 나에게 맡겨주신 학생들을 위해 기도하고 환대함으로 거쳐간 아이들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회복되는 것을 보고 싶습니다-

진짜? 너무 거창한거 아닌가? 솔직해져볼까? 아이들이 문을 열고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하면 머릿속에 '환대' 라는 단어는 자주 잊는다. 그래서 기계적으로 환대라는 걸 하려고 "안녕하세요"라고 눈을보고 인사를 꼭 하고 의자를 돌리는 행동을 시작한지 몇 년 되었다. 의자를 아이에게로 돌려 앉는 행동과 눈 마주침은 기계적인 습관이 되어 이제 몸에 딱 붙었다. 환대 습관은 생각보다 나에게도 유익했다. 그리고 아이의 눈이 닿는 곳에 [넌 소중한 사람이야] 라는 문장을 걸어두었다. 타고난 천성이 친절하고 성품이 좋은 사람은 이런걸 안해도 되겠지만 타고나지 않은 사람은 노력이라는 걸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올해 습관 하나를 덧붙이려고 이 글을 썼다. 거창한 저 문장 만큼 못할 수는 있는데 일단 자영업자만큼만이라도 해보자는 다짐 같은 건데 아이들 나갈때 그 아이들리게 큰 소리로 "응 잘가요"라고 카페 주인처럼 말하는거다. 사실 여기는 솔직히 말하면 손님이 더 온다고 수익이 나는 데가 아니라서 손님이 많아 지면 많아 질 수록 나는 귀찮고 힘들다. 만약 여기가 손님이 올 때마다 수익이 나는 데였다면 어떻게 했을까 상상해 본다. 


여긴 사실 아무도 지켜보는이 (예를 들면 카페 사장님 CCTV같은것)가 없어서 딱 내 생각만 하자면 손님은 덜왔으면 좋겠다. 애들은 좀 더 공손했으면 좋겠고, 학교에 적응 못해서 갈 데없는애는 좀 눈치를 보면서 가끔씩만 왔으면 좋겠다. 울고 가는 애들은 내 마음을 어렵게 하기 때문에 밝은 아이들이 좀 와주면 좋겠고 병원 보내야하는데 보호자가 올 수 없는 아이들도 누구라도 어서 병원을 데려가 줬으면 좋겠다. 친구가 없어서 찐따라고 불리는 아이들이 와서 사탕먹고 노닥거리는 시간도 최대한 적으면 좋겠고 선생님한테 애교부리는 애들 애교만 보고 아무일 없이 그냥 하루가 지나갔으면 좋겠다.


현실은 이렇다. 출근하자 마자 문앞에 기다리는 환자가 있다. 아침에 병원을 갈까 말까 고민하다 일단 우격다짐으로 학교를 보호자가 보내서 입을 뚝 내밀고 문앞에 기다리는 그런 환자다. 그런 환자로 출근을 시작하면 아이를 달래고 싶고 도닥이기 보다 보호자에 대한 원망이 내 마음을 딱 지배해버리기 쉽상이다. 그러다 쉬는 시간에 마구 몰려오는 많은 친구들은 공손하지 않고 이쁘지 않은 말로 내 맘을 후벼파기도 한다. 병원 가야하는데 보호자는 오지 못하고 그 상황을 해결하려 고군분투하기도 한다. 마음이 아프고, 친구가 고픈 그런 친구들이 오랜 시간을 머물게 되는 여기 보건실은 사랑받아 본적이 없어서 어떻게 사랑을 받고 싶다고 메세지를 보낼 줄 모르는 가련한 영혼들이 잔뜩 모인다. 아~~~ 환대는 어디갔는가~~~~~~~


그래도 오늘도 카페사장님 만큼만 하자. "응 잘가요"라고 이용자와의 만남의 끝을 그렇게 최대한 예쁜 목소리를 내어보기로 한다. 주로 그러기도 하지만 다음 환자 바로 받느라 그냥 나가는 친구들을 보낼때도 많았다. 내가 카페나 약국 같은 곳을 이용하고 나갈때 종업원이 우아한 목소리로 "안녕하가세요" 라고 말해주면 그렇게 그 기관에 대한 좋은 이미지가 생기더라. 문을 열고 나가는 그 3초의 시간 동안 나는 우아함을 실어 그렇게 말해보고 싶어졌다. 의자를 돌려 눈을 마주친것도 습관이 되었으니 이것도 습관으로 붙여서 기계적 환대를 이끌어 내보리라. 내가 받는 월급을 월중 이용자로 나누어서 돈을 받는 다고 생각하보면 고마운 이용자들이 아닌가.. 저렇게 거창한 환대라는 단어를 사용한 문장이 멀게 느껴지는 날은 카페사장님 만큼만 하자고 마음을 먹어 본다. 카페 사장은 나가는 손님에게 우아하게 인사를 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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