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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노트/끄적끄적

딴지 묵상 230406

by letter79 2023. 4.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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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유니온-매일성경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27-31절 ‘낮추는 사람이 큰 자가 되는’(18:4) 나라의 왕위 즉위식을 거행하십니다. 황제의 옷(홍포)과 왕의 홀(갈대)과 왕관(가시관)을 갖추고, 모욕과 수치와 조롱의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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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오늘 말씀을 읽는데 왜 울컥하는지 모르겠다. 이 본문을 내가 얼마나 많이 읽었던가.. 예수님이 그 역사의 순간에서 당하신 일이 왜 이렇게 슬픈지 모르겠다. 2000년 전에 어떤 정치범이 당하고 있는 고문과 희롱의 순간이 왜 나를 울컥거리게 하는가? 그렇게 오래된 일을 왜 사람들은 자꾸 기억하자고 매년 이런 고난 주간을 지내고 있는가?

오늘은 '희롱' 이라는 단어가 마음에 남는다. 웃기지마. 신은 없어. 니가 신이라고? 신이면 너를 구원해봐. 라고 하는 부분이다. 사실 그런 생각은 내가 '나는 신이다'를 보면서 정명석 등의 사람들이 감옥에 갇히는 그런 재판장안에 있었다면 나도 했을 것 같은 생각이다. 아니 신인데 왜 자기를 구원하지 못하는가? 그러면서 전 인류를 구원하겠다고 큰 소리치고 자기가 유대인의 왕이라는 정치범의 누명을 쓰는것인가? 내 안에도 그 시대를 살았다면 희롱, 비웃음 그것을 멈추지 않았을 수도 있다.

정치범이 었던 어떤 서른 세살짜리 남자가 2000년 전에 죽어가는 과정을 생각하는 고난주간이다.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내 안에 희롱의 목소리도 볼륨을 크게 하고 있는데 신기하다. 이상하게 설명할 수없는 눈물이 나는 것이다. 그게 나랑 상관이 있을 수도 있어. 시간을 뚫고 오셨던 예수라는 사람이 자기는 양을 위해 목숨을 버리는 선한 목자라고 하셨던 말씀이 생각난다. 양을 위해 목자가 목숨을 버리는게 어디 가당키나 한가? 그런데 그게 역사속에서 진행되었고 그 역사는 오랜 구약의 문서에서 부터 예언되어 왔던 것이라니.. 십자가와 관련된 행동, 발언, 사건들이 그대로 예언을 성취한 것이라니 합리적 의심도 든다. 예수의 죽음 후에 끼워맞춘 것은 아닌가? 

내안의 희롱의 목소리가 이렇게 큰데 설명할 수 없는 눈물은 무엇인지 모르겠다. 예수님은 무진장 사랑하셨던 것일 수도 있다는 가정의 목소리다. 나를 말이다. 그리고 온 인류를 말이다. 자기를 희롱하고 못박는 그 사람까지도 말이다. 희롱의 목소리와 의심의 목소리는 크지만 그 만큼 간절하게 예수님을 갈망하는 목소리도 커지는 오늘이다. 예수님의 죽음은 설명할 수 없지만 내 안에서 자주 나에게 이렇게 말한다.

"널 위해 죽었어. 잊지마 넌 그런 존재야. 살리려고 죽었단다. 그게 내 방식의 사랑이야" 

아 말도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