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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좋은교사

22.5.19. 동료와의 갈등 그 이후

by letter79 2022. 5. 19.

체육대회날이다. 계주하다가 넘어져서 좀 심한 찰과상 환자가 생겼다. 그럼 그 아이곁으로 우르르 사람들이 몰린다. 아이가 많이 아파했나보다. 동료 교사가 보건부스에 있는 나에게 뛰어왔다. 저기 아이가 다쳤다고.. 나는 '의식있는 찰과상환자인데 나더러 거길 가라는 건가? 어차피 걸어서 여기 보건부스에 드레싱할 것이 있는데 내가 거길 가서 뭘 어쩌라는건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이가 이쪽으로 와야 한다'고 말했더니 대뜸 소리를 지르는 것이다.

"아니 우리가 가야죠!"

엥 너무 당황스럽다. 갑자기 너무 화가 치밀었다. 소리지른 선생님 어깨를 꽉 잡고

" 선생님 아이가 의식이 있잖아요 그리고 이렇게 화내지 말아요. 여기에 드레싱할 것도 다 있는데요"

그렇게 말하면서 열은 받았지만 환자가 있는 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는데 저쪽에서 환자가 부축을 받으며 걸어오기 시작했다. 나는 인상을 팍 쓰면서 다시 부스로 돌아왔다. 걸어오는 그 학생을 보고 나에게 소리지른 그 동료교사는 미안했는지 "샘 미안해요"라고 말했는데 이미 상할데로 상한 마음은 에너지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2-3분 정도의 잠시간의 갈등이지만 나는 이 갈등이 전에도 있었던 것이 기억난다. 의료인인 내가 어떤 상황에서 내리는 결정에 이래라 저래라 하면서 한없이 '오버'하는 그런 동료교사에게 나는 정말 짜증이 난다. 내가 너무 차분하게 혹은 가볍게 상황을 바라보는것이 그 사람에게는 무정함으로 느껴지는지도 모르겠다. 이전에도 내가 좀 더 '오버' 해주길 바라는 그 마음으로 내가 보기에 선을 넘는 요구를 한 적이 여러번이다. 학생을 향한 사랑이 녹아져있어서 그 마음을 마음 놓고 미워할 수 도 없다.

 

이상하게 분이 안풀렸다. 전화를 해서 그 동료교사에게 그런 식으로 내가 하는 결정이나 처치 상황에 개입하는 것이 나를 한없이 무시하는 것 처럼 느껴진다고 말했다. 내가 하는 결정이나 처치가 다 옳을 수는 없지만 일단은 존중해달라고 했다. 오늘 같은 행동에는 나는 상처받는다고 특히 소리지르면서 말하지 말아 달라고 말했다. 그 교사가 미안하다고 했는데도 마음이 풀리지 않는다. 선을 너무 넘었다. 한번 더 넘으면 또 말할 것이다. 그는 유일한 입사동기이며 나보다 나이가 어린 교사라 더 그런 것 같다. (22.5.12. 쓴글)

 

딱 1주일 지나서 이 일기를 덧붙여서 써본다. 그 교사와 만나서 커피를 마셨다. 놀랍게도 그녀는 나때문에 상처받았다고 말하고 있었다. 내가 냉담하게 말해서 자기는 상처받았는데 도리어 그날 본인이 상처받았다고 전화를 해서 놀랐다고 했다. 나는 이 갈등상황에서 새롭게 배우게 된 것이 있었다. 내가 화난 것은 그 사람의 무례함 때문인지 아니면 냉담하고 차갑다고 느껴지는 내 행동을 오해해서 억울한 것인지 잠시 헷갈리기 시작했다. 왜 그렇게 화가났는가... 내가 무시당해서 화가난건 사실은 아니었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내 속마음은 이것이었다. 동료교사나 사람들이 나를 차갑고 매정하게 보는 것이 그렇게 싫었다. 억울했다. 내 속마음은 억울함이었다. "사실 나는 매정하고 차갑지 않아 진짜 따뜻한데 오해해서 억울해. 전문적인 내 문제해결 방법이나 처치에 대해 인정해줘!" 이렇게 말하고 싶은 것이었다. 이 사건과 비슷한 경험이 몇 번 있었는데 헝클어진 그 마음이 정리되지 못해서 억울함이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한편으로 그 억울함 안에는 양가감정도 있다. "따뜻하게 더 잘해줄수 있는데 왜 넌 그걸 못하는데?" 그렇게 다른 사람들이 나를 보는 것 같은 그 시선에는 내 목소리도 있었다. 나도 나에게 그렇게 말하고 있었는데 누가 그렇게 살짝만 그 뉘앙스로 말하면 폭팔하는 트리거포인트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실은 나를 차갑다고 보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다. 나에게 고마와하는 사람이 훨씬더 많은데 내가 나의 그 매정함과 차가움을 용납하지 못해서 누군가가 그렇게 지적하면 화가 나는 것이었다. 그렇다 나는 나에게 화가 난 것이었다. 알고 나니 왠지 내가 불쌍해서 울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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