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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좋은교사

쫌 이상한 사람들 시리즈

by letter79 2022. 3. 22.

시리즈물로 글쓰기에 맛들여서 가끔씩 [쫌 이상한 사람들]이란 시리즈로 가려고 한다. 주욱 연재는 아니고 툭툭 만나는 쫌 이상한 사람들이 생기면 적어볼 작정 이다. 제목은 그림책 '쫌 이상한 사람들' 을 참고했다.

K교사는 학급 편성때 힘든아이 하나를 꼭 자기 반으로 데려가신다. 이번에도 1학년 때부터 유명했던 T를 데리고 가셨다. T는 위기가정이었고 어린 동생 둘이 있고 엄마는 삶에 많이 지쳐있었다. T는 역시나 학기초 부터 자꾸 집에 가고 싶어했고 학교에 오기 싫을 때가 많았다. 슬슬 중학교 1학년 2학기 때부터는 어울려노는 무리가 심상치 않은 아이들이었고 겨울 방학 때는 가출도 하고 친구집에서 지내기도 했다고 들었다. T는 선택적 함구가 좀 있는 아이였는데 보건실에 와서 그 묵직한 입을 열지 않고 무슨 질문을 해도 답변을 하지 않는 상황들이 종종 기억이 난다. 원래 그런 아이인가 했는데 수업에 들어가보면 딱 여중생의 그 철없음과 가벼운 말투로 아이들이랑은 참으로 잘 지내고 있는 것을 보고 놀랐었다.

감염병시국에는 학교에 나오기 싫으면 호흡기증상을 말하면 딱 좋다. 역시 T는 그 지점을 노리고 있었고 나로서는 별수 없이 이렇게 나오는 아이들을 집에 보낼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쫌 이상한 담임 K는 T의 학교에서 데리고 있기 작전을 펴기 시작하셨고 나와 T의 엄마를 한 팀원으로 모집하여 슬슬 움직이기 시작하셨다. 팀원인 나와 T의 엄마가 처음부터 팀원으로 순순히 들어간 것은 아니었다. 그 실갱이 장면이 너무나 쫌 이상해서 기록해두고자 한다.

엄마와 통화 장면 1
K교사 : "어머니 T가 지금 온라인 수업에 안들어오고 있어요~ 깨워주세요"
T 마덜 : "아침에 출근하기 바쁜데 어떻게 깨어있는지 확인하고 나오나요 이런 일로 이젠 전화하지 마세요"
K 와 T 마덜은 이렇게 아침 원격수업에 들어오지 않는 반복된 상황과 반복된 통화에 서로 감정이 상하고 만다. 그러나 K교사의 쫌 이상한 반응은 그 다음 K교사가 다시 건 통화내용이다.

K : "어머니 지금 우리가 이렇게 서로 감정적으로 갈 일이 아니에요. T 잘 키워봐요 우리. 우리끼리 척지고 T를 지금 그냥 손놓고 있으면 제일 손해보는건 T에요. T 서로 협조해서 잘 키워요. 우리가 이럴 때가 아닙니다 어머니"
T마덜 : "................ 제가 아침에 너무 힘들어서 그랬나봐요 죄송합니다. "
생각보다 T마덜은 막나가는 분은 아니었다. 나는 꽤 많은 경우 그냥 내새끼니까 내가 알아 포기 할테니 학교 너님은 신경쓰지말아라 이래라저래라 말아라 하는 학부모들을 많이 보았다. 삶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우면 아이를 포기하는가.. 처음엔 그런 부모를 손가락질 할 때도 있었고 원망 스러울 때도 있었다. 시간이 많이 흐르고 반복이 되면 그냥 그 부모도 사람이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나는 나대로 어른 역할을 해주면 될 뿐 이다. 하지만 여기는 보육기관이 아니니까 한계는 분명하다. 그러면서 싸악 마음이 차가워지는 경우가 얼마나 많았던가. 그래서 보통은 나가떨어지는데 그 엄마를 살살 구슬려서 다시 엄마와 학교의 공조체계를 굳건히 하는 그 통화 내용을 전해듣다가 약간 소름이 끼쳤다. 너무 이상하지 않은가..

나와 대화 장면 2
K교사는 보건실에 있는 나와도 공조체계를 유지하자고 먼저 전화를 걸어오셨다.
K : "선생님 T는 제가 특별관리하려고 해요. 머리아프고 배 아프다고 오면 그냥 비타민 하나 줘서 꼭 다시 올려보내세요. 제가 갈아서 먹이고 수업듣게 하려고요. (참고로 T는 중2인데 아직 알약을 못먹는다며 그냥 누워있고 싶어함) "
나보건 : "어떻게 갈아먹이시려고요?"
K : " 나 애 둘키우면서 약많이 갈아먹여봤어요 잘해요"

자 오늘은 그 T네 집에 동생 둘이 확진이 되어서 다 토하고 엄청 앓고 있는데 T를 학교로 불러내어 검사도 안받은 아이를 일시적관찰실에 모셔두고 모든 수업을 화상으로 연결하여 수업을 받게 하고 계시다. 심지어 급식도 손수 받아다가 가져다 주시는데 그 급식 퍼다주는 장면을 내가 한번 찍어봤다.

화장실 갈 때도 내 허락 맡고 가라고 하면서 홀로 그 교실에 아이를 가둬두었다.

나는 넌지시 T에게 묻는다. "너 담임샘 어때?"
T : "좋은 거같애요" 오 놀랍다. 그 엄한 사랑을 받아보지 못한 것인가.. 이런 특별 관리에 대단히 괴로워하면서도 온갖 전화를 계속 안받고 도망가면서도 좋은것 같다니...

일주일 후 쓰는 글이다. T는 엄마와 극단적인 대치상황을 계속 벌였고 엄마는 학교 전화를 안받았다. 4일째 PCR을 계속 안받고 학교를 와서 내가 그냥 보건강사샘 차에 애를 태워서 보냈다. 주민번호도 모르고 동생들 확진문자도 안가져가서 보건소 직원이랑 나랑 언성 높이며 실갱이도 벌이는 해프닝도 있었는데 나는 우겨서 결국 받게 했고 엄마는 이제 학교 전화를 안받는다. 담임은 훈훈하던 지난주와 달리 아이의 잦은 거짓말과 선택적 함구(자기가 기분 나쁘면 대답을 안하고 가만히 있음)의 모습을 반복해서 보여서 뒷목을 잡기 시작했고 나도 마찬가지 였다.

 

쫌 이상한 사람 시리즈는 자주 그리 훈훈하지 않다. 아이한테 이만큼 했는데 전혀 돌아오지 않을때 현타가 온다. 특히 거짓말로 신뢰를 깨버리는 상황이 되면 정말 분노가 치민다. "그 나이에 감히 ...... 이래가 내가 너희들을 혐호하는거야 갱생이 안되서..." 김혜수의 연기가 오버랩된다. 더욱이 양가감정으로 힘든 것은 아이가 갈데가 없어서 그러는 걸 아니까 애잔한 것이다. 가정이 아이를 돌보지 못하고 포기해버렸을 때 아이가 느낄 그 깊은 어두움을 나는 감히 상상할 수 없다. 그러니 애잔하다. 그러니 저러는 거 모르는거 아니다. 불쌍한데 밉다. 그래서 미치겠다. 

 

3일 후 쓰는 글이다. T는 엄마와 극단적인 대치상황을 계속 벌였고 엄마는 학교 전화를 안받았고 T는 4일째 PCR을 계속 안받고 학교를 와서는 머리가 아프네 목이 아프네를 연발한다. 나는 그냥 보건강사샘 차에 T를 태워 선별진료소에서 검사받고 오게 했다. 주민번호도 모르고 동생들 확진문자도 안가져가서 보건소 직원이랑 언성 높이는 실갱이가 있었는데 나는 우겨서(엄마가 지적장애가 있어서 협조가 안된다고 꾸며댐) 결국 받게 했다.

 

담임은 훈훈하던 지난주와 달리 아이의 잦은 거짓말과 선택적 함구(자기가 기분 나쁘면 대답을 안하고 가만히 있음)의 모습을 반복해서 보여서 뒷목을 잡기 시작했고 나도 마찬가지 였다. 엄마는 학교 전화를 계속 무시하시다가 오후 쯤 받으셨는데 이제 아이를 포기하는 말을 하신다. 아이에 대한 노여움과 원망이 가득이시다. 급기야 어제 T는 엄마를 경찰에 아동학대로 신고를 했고 쉼터로 갔다. 쉼터는 휴대폰을 사용하지 못하고 코로나시기에는 하교 후 외출 금지다. 우리도 엄마도 너무 좋다.

옆에서 이 장면을 지켜보신 선배 선생님이 그러신다.

"애가 갈 곳이 없네. 그래서 밖으로 도네.. 엄마가 썩은 동아줄이라는 걸 아는거야.. 가출 친구들은 자기 마음을 받아주거든 그러니 거길 가는거야 집이 불편한거야 얘는...그래도 살길을 찾네 사회복지사들은 직업으로 자길 돌볼 줄 안다고 판단한거지.. 가정에서 포기한 아이에게 학교의 최선은 무엇일까? 질문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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