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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영화, 음악 이야기

역경이 싸대기를 날려도 나는 씨익 웃는다 (김세영)

by letter79 2023. 8. 3.

코로나 4일차 오후 나는 사람 하나를 만나고 왔다.  (물론 오프라인이 아니라 책으로 만났다) 내가 청년시절 교회에서 만난 같은 공동체는 아니었지만 건너서 얼굴과 이름은 알았던 사람이다. 아마도 같이 게임도 했을꺼야.. 아마 내가 떠올리는 그 얼굴이 맞을 거야 가물가물 기억하면서 읽었다. 책 뒷면에 아주 많은 사람들에게 고맙다는 이야기 6페이지나  썼는데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건네는 인사말 가운데 아는 이름이 많이 나와서 키득키득 거리면서 읽었다. 책에 등장한 이름 하나에게 전화해서 이 책 이야기를 했다.

'흙수저의 고난분투기' 라는 친구의 요약 추천사가 재미있다. 정말 흙수저이고 고난을 분투하는 과정이 나온다. 인생에서 얼얼하게 매운 싸대기를 4대나 맞는다. 그 4대의 싸대기 모두 얼마나 매서운지 읽는 내내 얼얼하다. 질병과 가난과 외로움 이 세가지가 그의 인생 내내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 비루하지 않다. 얼핏 자기 최면 처럼 약하게 보이진 않았다. 정말 씨익 웃는 것 처럼 보였다. 

에세이류 중에 개인의 고난을 담은 에세이를 읽다보면 조금만 잘못하면 독자와 멀어져서 혼자 달려가는 느낌이 들기 쉽상인데 이 책은 독자가 따라가게된다. 뛰어난 수작이라고는 당연히 말할 수없지만 이 작품이 마지막 작품이라면 아쉬운 필력이 있는 친구다. 더 쓸수 있을 것 같고 더 쓴다면 지인이라서가 아니라 책을 사서 읽고 싶어지는 그런 작가다. 작가로 사는 친구가 아니기 때문에 더 살아있는 글이고 삶이 묻어나고 호흡이 그대로 묻어난 책이다. 

역경이 싸대기를 날려서 아프고 가난하고 외롭지만 '타인을 부러워하지 않는, 나를 부끄러워하지 않는 삶'을 분투하고 있다. 묵묵히 let it be를 머금고 받아들인다. 묵묵히 살아간다. 인생에서 주어진 배역 중에 꽤나 난이도 있는 배역을 맡았는데 그 배역을 살아가고 걸어가고 사랑한다. 238페이지 본문 중

"내가 던져 준 이 배역은 너를 힘들게 하거나 죽이려는 목적이 아니야. 이 배역을 잘 해내는 사람은 어떤 역할도 잘할 수 있어. 그러니 지치지마. 지치면 천천히 쉬어가도돼. 실수 좀 하면 어때? 살 수 없다고 내팽개치지만 마. 다만 네 배역에 끝까지 충실하기만 하면돼. 이 배역은 너만큼 잘하는 사람이 없다고 생각해. 그래서 애초부터 원 캐스팅을 했던 거야. 너는 분명 이 캐리어를 끌고 자갈밭을 한발짝 한발짝 걸어가 그 문턱도 넘어갈 거라고 믿었거든. 너도 이제 잘 알지? 캐리어 안의 짐은 무거운 짐이 아니라 내가 너를 믿는 '힘'이라는 걸"
'나를 무시하거나 얕잡아 보지 않았어. 속는 셈치고 감사한 마음으로 질질 끌고 가보자' 

책의 에필로그는 나비 이야기로 마친다.

나는 감히 나를 번데기 안에 갇혔던 애벌레라고 말하고 싶다. 지난 10년간 질병, 가난, 외로움이라는 번데기 안에 갇혀 지낸 그가 번데기를 찢고 작은 나비로 비상하고자 한다. 하늘 하늘 날아가 꽃(독자)의 마음을 두드린다. 아직은 날개가 작아 높게 날지 못하나 오늘을 시작으로 낯이 익은, 보고 싶은 나비가 되고자 한다. 꽃들이 날아오라고 손짓하며 반가이 맞아 주는 나비가 되고자 한다.

그의 날개짓이 봄을 부르는 봄의 이야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손을 모으고 잠시 그를 위해 기도한다. 그에게 진짜 꽃같은 신부도 주시기를... 이제는 덜 가난하고 건강해져서 짝궁을 만나 나비의 이야기를 써서 다시 책으로 만났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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