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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영화, 음악 이야기

여기서 마음껏 아프다가 (김하준/수오서재/2022)

by letter79 2023. 1. 10.

이 책은 내가 쓰고 싶어하는 그런 스타일의 책이라 나에게 더 소중히 다가온 책이다.

"아이들은 울음과 웃음의 경계가 길지 않다. 아파도 웃고 웃다가도 아프니까. 다만 너무 많이 아프지 않고 자라주기를,

웃는 날이 더 많기를 오늘도 보건실에서 바라본다." 

초등학교 보건교사로 20년간 일하고 계신 분의 책이다.보건실을 '울음이 그치고 상처가 아무는 곳' 이라고 표현하셨는데 내가 일하는 중학교 보건실이랑은 조금 다른 느낌이다. 책을 집어 들며 한편으로는 지나치게 천사 같은 선생님의 아무도 따라할 수 없는 사랑 넘치는 글이면 오히려 거부감이들고 불편해질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사실 그런 부분이 없지는 않았다.

보건교사도 사람이다. 천사 가면을 쓰고 살다보면 분명히 속이 곪아서 오래 못한다 이 일은 정말이다. 학교에서 잘 눈에 띄지 않는 비주류 교사인 보건교사는 학교에 머무는 아이들이 엄마 없는 시간동안 '엄마라면 해줄 수 있는' 그런 역할(약간의 보육)도 요구 받고, 의료인으로서 전문성도 요구받는 데다가, 교사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수업과 교육들(잔소리들)을 해내는 사람인데 공무원으로서 행정업무는 아무도 모르겠지만 무지 많다. 아이들에게 받는 에너지와 사랑으로 하루하루 살아내야하는데 아픈 아이들은 그런걸 주기가 쉽지 않다. 책에서는 그들에게 받은 에너지와 사랑에 대해 언급하고 있지만 늘 그렇지 않다. 하지만 분명히 숨겨 두신 보물찾기 같은 보물같은 순간들을 이렇게 박제 하듯 글로 남겨주신것이 참 고맙다. 나도 그런 명장면들을 기록으로 남겨주어 지치고 나도 아프고 곪아터지는 순간에 꺼내보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글에서 내가 박제하듯 남겨두고 싶은 부분만 남겨두려고 한다.

스스로가 불행하다 느끼는 어른들 중 많은 원인이 내면에 상처 입은 아이를 내버려 두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어린시절 상처의 경험이 자신을 괴롭히는 경우, 마음 같아선 그떄로 돌아가 아파하는 자신을 안아주고 싶어집니다.  저는 보건실에서 아이들을 만나며 어린 시절의 저를 위로해 줄 수 있었습니다. 이 글을 쓰게 된 이유도 마찬가지 입니다. 보건실에 찾아오는 아이들을 좀 더 다정히 들여다보는 눈을 키울수 있었고, 그것이 저를 사랑하는 방법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6)
보건실은 간단한 외상을 치료하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이런 아이 하나를 발견해내기 위해 존재하는 곳이기도 하다. 어떤 위험한 징조를 감지하기 위한 센서가 되기도 하고, 가정과 교실에서 소외된 아이를 마지막으로 걸러낼 수 있는 체의 역할이 되기도 한다. 그 사건 이후 자주 오는 아읻르에게 "걱정거리가 있니, 요즘 어떻게 지내?" 라며 묻는 버릇이 생겼다. 내게 걱정과 고민들을 해결해줄 능력은 없다. 그러나 대부분의 걱정거리는 스스로 말하면서 정리될 정도로 사소한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친구들과 함께 놀고 싶은데 끼워주지 않아서
혼자 있고 싶은데 혼자 있을 데가 없어서
학교에서 울고 싶은데 울데가 없어서
아무도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이 없는 것 같아서
아이들은 갈데가 없어서 보건실에 가기도 한다.(18)
사진을 찍을 때 목적에 따라 렌즈를 바꾸면 좀 더 훌륭한 사진을 얻을 수 있듯, 한꺼번에 대여섯의 아이들이 몰려올 때와 단 한명이 왔을 때는 보는 방식이 다르다. (중략) 그렇게 카메라 렌즈의 종류와 사진가의 자세처럼 나를 능동적으로 움직이는 일이 중요하다.
아이들을 볼 땐
그림자도 함께 보기를,
그림자가 얼마나 큰지
알아보기를,
그림자가 너무 커 
그림자가 없는 줄 착각하지 않기를.(60)
"몸의 중심은 심장이 아니다
몸이 아플 때 아픈곳이 중심이 된다.
가족의 중심은 아빠가 아니다
아픈 사람이 가족의 중심이 된다. "(- 박노해, <나 거기 서 있다> 중에서)

학교의 중심은 어디인가? 물론 대다수의 아이들이 교실에 있으니 교실이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감히 보건실이라고 말하고 싶다. 보건실에 아프고 힘든 아이들이 넘쳐난 다면 행복한 학교일까?
보건실에 가는 아이가 없는 교실이 행복한 교실이다.
보건실에 가는 아이가 적은 학교가 행복한 학교다.(106)
만성질환을 가진 아이들에겐 언제나 말을 조심히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그런 아이들에겐 나의 섣부른 판단이나 말보다 따뜻한 미소와 태도가 더 중요할 것이다. 말보다 태도에 마음을 담자. 그럼에도 어떤 상황에서는 확신의 말이 때때로 치료의 일부가 되기도 한다는 믿음을 나는 아직 가지고 있다.(112-113)
잡초는 뽑아도 뽑아도 매일 생겨난다.그래도 근사한 잔디 정원을 원한다면 매일 뽑아야 한다. 보통 가정에서 어려움이 있는 아이는 학년이 올라가도 내내 보건실에 온다. 그러니 그냥 풀꽃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풀꽃을 뽑아버릴 재간이 없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보도블록 틈새에서도 근사한 꽃을 피우는 풀꽃처럼 교실에 뿌리를 내리고 당당한 풀꽃이 되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한 아이들도 있다. (중략) 흙이 너무 부족하여 차라리 물속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야만 하는 아이들이 있다. 유년기에 마땅이 제공되어야할 충분한 흙과 양분이 부족한 아이들이다. 그런 아이들에게 학교가 유리병과 깨끗한 물이 되어주면 좋겠다. 그렇다면 보건실의 물의 혼탁함을 관찰해 뿌리가 제대로 자라고 있는지 살펴보는 곳이 되지 않을까.(128)
아이들의 아픔에 더 마음을 쓸 수 있는 역량은 여유로움에서 온다. 5분 간격으로 홍수처럼 들이닥치는 아이들과 많은 업부, 지속적인 긴장감 속에서 어떤 보건교사가 아이를 매번 사랑으로 치료해 줄 수 있겠는가. 갈수록 많은 법과 규정 속 책임을 지우는 방식으로 일을 하게 만드는 제도 속에서, 어떤 보건교사가 언제까지나 아이들의 이유가를 차분히 들어주고 눈빛을 살필 수 있겠는가. 적어도 힘든 아이들이 꼭 해야할 말을 못해 더 곤란한 지경에 처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129)
보건교사의 일 중 밴드를 붙이는 행위는 아이들을 보는 시간이 하루 여섯 시간이라면 그 중 30분도 채 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밴드를 붙이는 동작의 반복, 그것이 갖는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무엇이든 작고 사소한 것도 오래 쌓이면 큰 덩어리 하나와 맞먹는 힘이 있다.
지금 내가 만난 아이는
35년 전의 나

35년 전의 내가 
무릎에 반창고를 붙여준다.
35년 뒤, 이 아이도 넘어진 누군가에게 
반창고를 붙일 일이 있을지 몰라

지금 나처럼(160)
보건교사는 천 명을 위해 존재하는 동시에 단 한 명의 위기에 직면한 아이를 위해 존재하는 의료인이다. 
보건교사라는 직업은 그다지 전문적이지 않은 최소한의 의료 기구로, 혼자 응급처치를 해야하는 막연한 불안과 긴장을 늘 안고 있다. 보건교사니까 어쩔 수 없는 직업적 숙명이라 하기엔 큰 학교에서는 그 놀람의 건수가 적지 않아 심적 부담이 만만치 않다. (중략) 학교에서의 사고는 언제나 다른 방식으로 발생하기에 경력을 쌓는다고 긴장이나 불안감이 썩 나아지는 건 아닌 것 같다. 다만 좀 더 유연하고 담대하게 맞닥뜨리는 힘은 는다고 믿는다. 다양한 사고를 목격한 경험이라는 수치가 있기 때문이다.(228)
성교육의 최종 목적은 젠더 감수성 함양이다. 젠더 감수성은 인간관계의 모든 것에 관여되어 있다. 젠더 교육은 남녀 편을 가르는 것이 아닌 다양성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것에 있다. 디지털 성범죄는 피해자 잘못이 아니라는것, 서로 혐오하지 않게 하는 것, 혐오를 바로 잡기 위해 노력하는 것, 남녀 성을 구분하기 전에 개개인의 고유한 특성을 바라보는 것, 성별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의 역량을 발휘하도록 돕는 것, 결국 서로를 존중하는 방법을 알게 하는 것이다.(243)
20년간 성교육담당자로 있으면서 연계성 없는 일회성 교육의 반복이라는 한계에 부딪쳤다. 제대로 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성교육 담당자라는 말을 듣는 것이 어색하고 불편하다. 마치 주인이 있는 곳을 내가 대신 입고 있는 것 같다.(246)
학교 방역 담당자의 일은 매일 하는 가사 일과 닮았다. 정말 중요한 방역도 작은 것들 하나하나에 깃들어 있다. 2022년 봄, 아이들의 절반 이상이 코로나르 앓고 난 지금, 걱정할 정도의 큰 합병증을 가진 아이가 없어 감사할 뿐이다. 상황은 계속해서 변하고, 어떤 변이 바이러스가 또다시 유행하더라고 아이들은 이겨낼 것이라 믿는다. 경험은 이미 희망을 안고 있다.(270)
울면서 들어오는 아이가 있다. 들어와 우는 아이가 있다. 말을 시키면 우는 아이가 있다.
그래도 나갈 땐 모두 울음을 그치고 나간다. 그게 내 일이다. 내일도 그럴 것이다. (278)
아름다운 아이가 들어오네, 라고 마음속으로 말했다.
한명
두명
세명
그러자 신기하게 아름다운 아이들만 들어왔다.
4월 16일 
학교에는 두 부류의 아이들이 있다.
아픈 아이들, 안 아픈 아이들
학교 밖에도 두 부류의 아이들이 있다.
살아 있어야 하는 아이들, 살아 있는 아이들
"선생님, 어떻게 해야 빨리 나아요?"
"잘 쉬게 하면."

"언제까지 쉬게 해요?"
"상처가 눈 감을 때까지."

"그게 언제에요?"
"시간이 알려줄 것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