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 괜찮은 해피엔딩 (이지선/문학동네)
책, 영화, 음악 이야기

꽤 괜찮은 해피엔딩 (이지선/문학동네)

by letter79 2022. 6. 26.

이지선님은 나랑 성만 다르고 이름이 같다. 나와 나이도 한살차이나는 언니인걸로 알고 있다. 대학생때 차사고로 온몸에 특히 얼굴에 화상을 입고 사투를 벌이다 살아났고 그 과정을 홈페이지(지선이의 주바라기)에 일기로 쭉 써왔고 나도 20대에 그녀의 일기를 응원하면서 보고 있었다.
나는 최근에 '외상후 성장'을 다룬 비슷한 책 '샘에게 보내는 편지'를 읽고 푹빠져서 독서모임사람들과 책모임도 했었다. 그책 역시 불의의 사고로 전신마비를 겪은 정신과 의사 대니얼고틀립이 손자에게 보내는 편지글 형식이다. 내 차에 몇권 사두고 선물하던 그런 책이다.
이런 류의 책들은 읽으면 생생한 고통의 이야기도 지나가기 때문에 쉽게 책이 읽히지 않는다는 지인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그럼 난 왜 이런 책을 집어들까? 곰곰히 생각해보면 아마 해석되지 않는 고통에 대한 갈망같은 것같다. 인생의 고통을 쉽게 해석하기 쉽지 않으나 어느 정도 고개가 끄덕여지게 해석하고 있고, 심지어 트라우마 이후 성장까지 하고 있는 실제 한 사람의 인생이야기는 나에게 인생이 뭘까 하는 그 해답을 다루고 있는 것 같아서 자꾸 다가가게 되는 것 같다.

나역시 성형외과 수술을 몇 번을 받아야 했던, 굳이 설명하자면 안면 기형과 점이 있었다. 이지선님의 수술 이야기랑은 비교도 안될 만큼 작은 수술이었지만 나름 힘들었던 사춘기 이후의 시기가 있었다. 누가 내 얼굴을 자세히 쳐다보면 얼굴이 빨게 졌었고 엄마에게 무슨 이야기를 한참 해도 내 얼굴의 점과 기형을 바라보며 내 이야기에 귀기울이지 않는 엄마의 한숨이 나를 주눅들게했던 그런 10대의 시기가 있었다. 정말 고맙게도 수술이 잘되어 화장으로 잘 가려졌지만 어릴적 치료받고 수술 받으면서 경험한 나의 생각의 깊이는 나를 많이 성숙하게 했다. 그래서 의료인이 된 것 같기도 하다. 외상후 성장은 어떤 느낌인지 살짝 맛본 것같다. 책을 읽으면서 나도 나를 뚫고 지나간 나의 얼굴의 상처를 기억하고 그 몇 번의 부끄러운 기억들이 다시 해석되는 것 같은 느낌이다. 이지선님의 이야기는 내 이야기이기도 했고 감히 지금 힘들고 자기가 마냥 부끄러운 누군가를 도와주고 싶은 그런 내 맘도 다시금 자극해준 이야기였다.

책을 집어 들기 전 이야기가 좀 길었다. 무튼 그런 마음으로 책을 읽었고 이 책은 방송인 송은이의 추천사도 한몫했다. 고난 극복의 아이콘이기 때문에 이지선을 좋아하는게 아니라 장미꽃에도 감사하지만 장미에 돋힌 가시에도 감사하고 어쩌다 장미에 벌레가 날아들어도 두려움없이 지나갈 수 있는 삶, 이 강도 높은 행복을 그녀에게서 보았고 그 유머 한스푼의 특급레시피를 발견했다고 했다. 역시 좋아하는 가수 션도 "인생은 동굴이 아니라 터널"이라고 말한 그녀의 말을 인용하면서 마라톤과 같은 인생 비유를 했다. 우리는 모두 꽤 괜찮은 해피엔딩을 꿈꾸는 마라토너이기 때문에 읽어보라는 추천사가 참 좋았다.

읽고 나서 나에게 남은 몇가지 문장과 단어가 있다면 '외상후 성장'과 '소망'이다.
두번 읽어야 할 것 같은 책이라 다시 달리고 있다. 다시 달리면서 일단 언더라인 문장을 적어둔다.

프롤로그11p
인생이 늘 기대했던 대로 흐르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감사한 일은 많았고, 서프라이즈 선물처럼 찾아온 좋은 일도 있었으며, 소소하지만 즐거운 일도 많아서 '살아남길 잘했어'라고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동굴 같은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에게 '당신에게도 꽤 괜찮은 헤피엔딩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우리 같이 힘내자'고 응원하며 살아가고 싶다.

사고와 헤어진 사람 20p
회복을 넘어 성장으로 가기 위해서는 내가 누군지 정의하는 그 '다시쓰기'가 필요했다. 나는 사고를 당한 사람인가, 아니면 사고를 만났지만 헤어진 사람인가, 사고와 헤어지기 까지 긴시간이 걸렸고 그 과정은 더뎠으며 몸이 아픈 만큼이나 마음도 많이 아팠지만 조금씩 조금씩 흘려보내듯 헤어졌다. 나는 음주운전 교통사고의 피해자로 살지 않았고, 그 때 그 자리에 마음을 두고 머무르지 않고 매일 오늘을 살았다.(중략) 나는 사고와 잘 헤어진 사람이다.

글쓰기의 힘 26p
(영화 사운드 오브 메탈 인용 대사)
" 그냥 써, 뭐라고 쓰든 어떻게 쓰든 아무 상관없어. 맞춤법이 틀려도 괜찮고 전혀 말이 안돼도 좋아"
"내 서재에서 새벽마다 그 수많은 아침을 보내는 동안 고요함을 맛본적이 있니? 네 말이 맞아 세상은 계속 흘러가버리지. 정말 잔인해. 하지만 나에게는 그 고요한 순간이, 그 평온함이, 바로 거기가 하나님의 나라야. 이 형편없고 시시한 세상이 갑자기 빛나고 웅장해지면서, 모든 두려움이 사라지는 순간들, 그곳은 절대 너를 버리지 않아"
29p
스피노자는 [윤리학]에서 "정, 고통스러운 감정은 우리가 그것을 명확하고 확실하게 묘사하는 바로 그 순간 고통이기를 멈춘다"라고 했다.
30p
작가가 되지 않아도 좋아요. 지금 마음속에 일렁이는 파도를, 나를 덮쳐버릴 것 같은 그 고통을 글로 적어보세요. 그 파도가 얼마나 높은지, 그래서 얼마나 무섭고 두려운지 적다보면 어느새 폭풍은 지나가고 잔잔해진 파도를 올라타 넘실대는 저 수평선 너머를 바라볼 용기가 생길거에요

비교행복 43p
진짜 행복해지려면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얻는 행복도 불행도 차단해야한다. 대단한 일을 성취하고 값비싼 것을 소유했을 때 느끼는 짧은 행복 보다는 일상에서 자주, 길게 누리는 것에서 행복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더 행복해지려면 그런 행복거리르 찾을 때 마다 감사와 감탄을 표현하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한다.

포기하지 않으면 기적은 일어납니다 186p
마라톤을 완주하고 나니 '장거리도 단거리 목표를 여러번 세워서 가면 되겠구나'하고 깨달았다.
(중략) 더 가면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지 더 가더라도 진짜 죽는 것은 아니었다. 죽을 것 같은 두려움이 나를 사로잡은 것이지 결코 그 길이 나를 죽이지는 않았다.
하루를 보내는게 아니라 하루는 쌓이는 것임을 기억하면 좋겠다.

오빠가 그랬다 p.208
폭풍 한가운데에서도 절대자의 존재를 잠잠히 믿고 바라보는 것이 신앙임을 다시금 깨닫는다. 그덕에 고해 라고 여길수있는 인생이 때로는 기쁨과 감사로 채워지기도 하고, 이정표도 없는 망망대해 같은 인생에서 나침반과 지도를 얻는 신비한 경험을 하기도 한다.

봄을 선물해준 아이들 p.231
(이영표 선수는) 인간은 본질적으로 사랑으로 사는 존재이기 때문에 사랑받고 사랑해야 행복해질 수 있다고 믿는다고 했다. 이제야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 것 같았다. 타인을 사랑하고 또 사랑받는데서 오는 힘,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행복해 질 수 있는 힘이라는 사실을 세움 아이들을 만나고 깨달았다.

에필로그 '상처입은 당신에게' 237p
우리는 "나쁜 일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으며, 나에게도 일어났다"는 사실을 인정해야합니다. 그렇게 할 때, 비로소 회복을 향한 걸음을 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나쁜일이 일어났다고 해서 반드시 벌을 받는 것이 아니다"라는 사실도 받아들여야 합니다. 당신은 죄인이 아닙니다.
p.242
외상후 성장을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면 세가지 노력이 필요하다고 학자들은 이야기합니다.
첫번째는 '의도적인 생각의 되새김질'입니다. 제가 사고를 당한 것이 아니라 만났다 헤어졌다고 말하는 것도 그 상황을 끊임없이 되새김질하여 사건을 새롭게 평가하고 의미를 찾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두번째는 '감정의 표현' 입니다. 안전하다고 느끼는 곳에서 믿을 만한 사람들에게 자신의 고통과 감정을 표현하면 훨씬 마음이 안정된다고 합니다. 여기서 믿을 만한 사람이란 당신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도 말과 행동이 달라지지 않을 사람입니다. 감정은 말로도, 글로도 표현할 수 있습니다. 그림을 그릴수도, 노래를 하거나, 춤을 출 수도 있습니다.
세번째는 '사회적지지' 입니다. 가족과 친구, 지역사회의 존중과 관심, 따뜻한 배려와 응원, 신뢰를 받을 때 인간은 부정적 스트레스를 감당할 힘이 생깁니다. 그러니 부디 혼자서 아파하지 마시고 계속 주변 사람들과 연대하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작은 희망의 힘을 얕잡아 보지 않았으면 합니다. 희망에는 사람을 살게하는 엄청난 힘이 있습니다.

p246
상처입은 당신과 우리 함께, 이 나쁜 일을 잘통과해서 극심한 고통 가운데서도 성장을 이룬 사람으로, 꽤 괜찮은 헤피엔딩을 기대하며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이 글이 어디선가 오늘 또 하루를 견뎌내는 당신에게 응원이 되길 바랍니다. 당신이 스스로에게 "괜찮아 괜찮아" 다독일 수 있기를, 그래서 언젠가 "그래, 살아남길 잘했어"라고 말할 날이 오기를 마음을 다해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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