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7.13. 저는 제가 문제인 것 같아요
일상 노트/끄적끄적

22.7.13. 저는 제가 문제인 것 같아요

by letter79 2022. 7. 13.

글로 적어보면 비언어적 의사소통과 순간의 감정들을 다 녹여낼 수는 없다. 하지만 기억하고 싶은 그런 대화가 있다. 오늘은 그런 기억 한꼭지를 적어본다.

어깨랑 목 주위 근육이 너무 뭉쳐서 근육통으로 온 아이가 있었다. 롤파스로 근 부분 뭉친부분을 문질러주면서 "에고 요즘에 많이 긴장하고 지냈고나"라는 한마디를 내가 한 것 같다. 그런데 아이가 운다. 마스크 앞으로 눈물이 줄줄 흐른다.
여중생의 눈물은 흔하긴 하다. 당황하지 않는다 이제는.. 자 이제 이 눈물을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나는 이런 눈물에 이렇게 대처하는 편이다.

나 "아파서 우는거니?"
학생 "아니요"
나 "선생님이 궁금해지는데 고민이랑 걱정이 있나 본데 얘 너 요즘에 잠은 잘자니?"
 학생 "요즘 한참 못 잤어요. 그래도 최근에 다시 자요. 밀린 잠을 몰아서 자나봐요"
나 "다시 잠은 잘 잔다니 다행이네. 그럼 먹는거 체크해보자 밥은 잘먹니?"
너 "안 먹진 않아요 근데 밥 맛이 없어요"
나 "요즘 무슨일 있니? 혹시 자세히 얘기하기 어려우면 일단 장르만 얘기해줘도 좋겠네 울고 있는 너를 보면 선생님이 궁금하고 도와주고 싶잖아
1번 - 가족, 2번 -친구, 3번 -성적, 4번- 진로(중3이라 4번을 넣어본다)"
학생 "거기에 답이 없어요"
 
오 신기하다. 보통 2번이다. 대부분 2번 친구이고 친구에게 억울한 일을 당하거나 관계가 너무 어려워서 우는 경우가 제일 많다. 그렇게 얘기만 하고 울다 나가거나 하소연이 시작되면 들어주면 된다. 보건실에 환자가 계속 밀려오면 이렇게 말한다. "지금 마음이 좀 더 편해지고 싶으면 우리 상담선생님한테 이어서 얘기할까? 샘이 전화해 줄게" 그렇게 상담선생님에게 연계를 하는 경우도 있는데 대부분 그냥 간단히 털어놓고 간다.

그런데 이 학생은 신기하게 1,2,3,4번 안에 답이 없다고 한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다.
 
학생 "저는 제가 문제인 것 같아요. 저요"
나 "와 그런 통찰은 정말 대단한 통찰이야. 너는 성찰하는 힘이 큰 아이구나. 어른도 힘든 이야기를 지금 한 거거든. 내가 나 스스로 맘에 안드는 거 그런 얘긴가?"
학생 "맞아요 그런것 같아요"
나" 좀 더 자세히 얘기해볼래?
학생 "제가요 어제 반에서 되게 열받는 힘든 일이 있었는데요. 아무렇지도 않은 척 했어요. 괜찮은 척을 했어요."
나 "오 그랬구나.. (침묵) 그때 그때 꾹꾹 눌러 놨던 부정적감정이 사라지는게 아니라 언젠가는 폭팔하듯이 힘이 세지는 거 같지 않니? 어른인 나도 그런것 같애. 나 스스로에게 좀 미안해지는 기분이 들던데.. 나에게 잔인하게 굴었던 것 같은 느낌이 들 수 있을 것 같은데 맞니?"
학생 "맞아요" 또 울기 시작한다. 많이 울었다
나 " 울고 싶으면 저기 의자에서 편하게 울다가가 색칠하면서 마음도 정리해보고 올라가렴. 와 스스로를 성찰할 수 있는 능력이 대단해서 칭찬하고 싶어 어른들도 자기 마음 잘 모르거든"

#보건실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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