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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좋은교사

여기에 오면 숨겨줄게

by letter79 2023. 4. 12.

초록이(가명)는 우리학교 1학년 신입생이다.(참고로 여중생) 3월 둘째 주 부터 초록이를 찾으러 보건실에 오는 학생과 교사가 가끔씩 있었다. 초록이는 오지 않았다고 말하면 당황해하는 표정으로 문을 닫고 나가는 상황이 종종 발생하자 나는 궁금해졌다. 가끔 이렇게 학생이 사라지면 학교는 발칵 뒤집힌다. 아이의 안전이 걱정되어 교사는 밥도 못먹고 학교를 뒤진다. 그러다 초록이는 종종 빈교실과 화장실에서 발견되었다. 그러기를 여러차례 아이는 특별 관리 대상이 되어 톡방이 열려서 10명 정도의 관련 교사들이 머리를 맞대고 상의를 한다. 초록이를 조사한 여러 창구의 교사들이 정보를 모은다. 초록이의 정보는 아래와 같다.

- ADHD

-아이 특성 : 부정적 시선을 못 견디고 시선에 민감한 편, 교우관계에 큰 문제는 없었으며, 어른들과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함. 거짓말 많음.

-이미 비슷한 사례 많았음(초등학교에서도 같은 상황, 학원 안가고 카페에서 숙제, 학원 화장실 숨기 등등)

-문제 상황에서 회피하려는 경향이 강함. 초등학교 담임은 초록이는  '하기 싫어하는 것은 절대 하지 않는 아이'라고함

-잡으려고 하면 대들고(집 나간다 등등), 포용하려 하면 문제 행동 지속되어 가정에서도 훈육에 어려움을 겪는 상황

 -소설 쓰는 것을 즐겨 쉴 틈이 생기면 계속 연습장에 글을 쓰는데 괴기 소설이라고 함. 

자 초록이를 어떻게 할까? 냉탕으로 갈것인가 온탕으로 갈 것인가 고민이 되는 순간이다. 잡으려고 하면 대들고 포용하려 하면 문제 행동은 그치지 않는다. 일단 보건실은 온탕으로 가기로 나는 마음 먹었다. 아이가 보건실 간다고 핑계대고 나와서 계속 어딘가 도망가서 숨어있는 거라서 나는 아이랑 한번 이야기를 나누어 보기로 하고 아이와 대화를 시작했다.

  • 숨고 싶고 도망가고 싶은 버릇을 점차 줄이기 위해 도와주겠다
  • 숨고 싶고 도망가고 싶을때 보건실에 와서 지금 그런 상황이라고 말하면 잠시 도서관에 숨겨주겠다  
  • 이 모든 도움에 거짓말이라는 변수가 있으면 도와줄 수 없다

아이는 숨겨주겠다는 교사의 제안에 흠칫 놀라면서 이 비밀스러운 제안에 함께 하기로 하고 나는 초록이 톡방에는 비밀로 하고 또 그런 상황이 반복되는지 살펴보기 시작했다. 어제 발생한 상황이다.

초록이는 보건실에 쭈뼛쭈뼛와서는 한참을 망설이더니 말을 힘들게 하기 시작했다. 아주 어렵게 돌려서 말하는 걸 듣고 있는게 영 답답했지만 기다렸고 끼어들지 않았다. 결론은 도망가고싶어요 였는데. 초록이 체육시간 체육시간이 오늘 유난히 힘들다고 도와달라고 했다. 체육을 싫어했던 나는 폭풍 공감과 일단 도망가지 않고 와서 자기 감정을 솔직하게 말한 것을 무표정으로 담담하게 칭찬했다. 하지만 체육시간이 힘들다고 해서 도서관에 가있게 해달라는 요구는 학교 학생 모두에게 적용되는 규칙은 아니니까 좋은 방법이 없을까 하고 구슬리기 시작했는데 이 부분이 좀 미묘하게 힘이 들었다.

결국 감사하게도 내 의도에 맞게 입실확인서에 두통으로 참관수업하게 해달라고 적어주고 수업시간에 참관만 하는 것으로 스스로 결정했다. 그러면서 고맙단다. (내가 더 고마운데..) 나는 이런 식으로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 드는 날에 도와주는 걸 한학기에 몇 번 도와줄지 물었더니 3번이면 된다고 앞으로 두 번만 더 도와달라고 했다. 이번 걸 3번의 카운트에 넣을지 말지 물었더니 넣어도 된다고 해서 씨익 웃음이 나왔다. 아이가 조금씩 좋아지는 것 같기도 하다는 희망이 들었다.  내가 잘한건 아마도 공감일것같다. 사실 도망가는 아이는 종종 있어서 가끔 써먹었는데 거의 안먹혔던 방법인데 초록이에게 먹혀서 내가 더 고마왔다. 

#hjsdairy
#여기에오면숨겨줄게  
#보건실이야기
#냉탕과온탕사이
#오늘은온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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