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의 주일을 지나며..
일상 노트/끄적끄적

스승의 주일을 지나며..

by letter79 2024. 5. 20.

제주 4박을 마무리 하고 오늘은 새벽6시에 숙소에서 부지런히 나와 렌터카를 반납하고 8시 50분 김포행 비행기를 탔다. 공항은 조금더 서두르고 조금더 정신을 단디 챙기지 않으면 안된다. 우리 부부는 둘다 덜렁대는 스타일이고 둘다 서로 손많이 가는 데다 구멍이 많아 공항에서 더욱 긴장을 하게 된다. 작년 딱 이맘 가족 여행때는 비행기를 놓친적이 있다.

 

비행기를 놓친 기억 때문인지 딱 일년 뒤에 그 기억이 생생해지는 오늘이었다. 잘해야지 하고 맘먹어서 그런지 정신을 단디 챙기고 수속을 모두 마치고 비행기에 올랐다. 새벽부터 서둘러 김포행 비행기를 탄 건 교회청소년부 아이들을 만나기 위해서 였다. 정확히 청소년부 예배가 시작되기 5분전에 도착을 해서 쎄입! 하듯 자리에 앉으니 마음이 참 좋았다. 오늘 아침에 산 한라봉 과자를 나누어주며 아침에 제주에서 사온 과자라고 하니 아이들이 놀란다. "너희들을 안보면 입에 가시가 돋힐것 같아서 빨리 달려왔지!"라고 하니 한 아이가 그거 안중근 아니냐고 한다. 그렇지 여기가 내 자리지 하면서 3초간 행복하다.

 

오늘은 교회에서 본당 입구에 스승의 주일이라고 레드카펫을 깔고 아이들의 감사 멘트를 동영상과 포스트잇으로 받아 교역자들이 준비해둔 날이었다. 문득 나는 교회선생님인 나를 생각해본다. 사실 매주 아이들이 이쁜 것은 아니다. 미안하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그리고 매주 공과공부 시간이 흐뭇하고 기다려지는 것도 아니다. 스무살 초반에 발을 들인 교회선생은 전에도 말한것 같은데 관성같은 것이고 이제는 공기같은 것이다. 그런데 희안하게도 오늘은 비행기 시간 쫓겨 겨우 이 자리에 앉았으면서 오늘 문득 감격스럽다. 예배당에 앉아 있는 아이들의 뒤통수가 귀여워죽겠는것이다. 20대 초반에 시작했을 때는 아이들이 나를 좋아해줘서 재밌었는데 이제는 아이들이 나를 좋아해줄 수 있는 매력이 나에게는 점점 사라진는걸 받아들일 때다. 세대차이도 나고 나에겐 또래 아이들이 슬슬 거리를 두고 싶어하는 '엄마' 냄새 비슷한 것이 나는 사람이 되버린것이다. 오늘은 울컥 그런 기도가 터져 나온다. "하나님 얘네들이 지금은 찬양시간에도 기도시간에도 입도 벙긋거리지 않고 집에 갈 시간만 기다리는 부모따라 억지로 앉아있는 아이들이지만요. 얘네 인생에도 똥 줄 탈때가 있겠죠. 그럴때 하나님 하고 부르짖을때가 있겠죠. 그리고 신이 존재하는가 궁금해지고 회의하다 뜨겁게 질문하게 될때가 있겠죠. 그럴때 얘네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꼭 대답해주세요. 특히 우리 청소년부 아이들은 물으면 꼭 대답해주세요 침묵하지마시고요" 하면서 눈물이 나온다. 무기력함이 가득한 지금의 청소년부 분위기는 어떤 날은 지겹고, 어떤 날은 조급함같은 것이 올라오고, 어떤 날은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는 패배감같은 것이 드는데도 떠날 수 없게 만드는 뜨거움이 이렇게 나를 오랜 시간 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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