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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영화, 음악 이야기

괜찮아, 안죽어

by letter79 2019. 5. 10.

http://aladin.kr/p/Xejfp

 

괜찮아, 안 죽어 - 오늘 하루도 기꺼이 버텨낸 나와 당신의 소생 기록

분초를 다투며 죽음과 사투를 벌이는 응급의학 전문의로 10년 vs.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내일 같은 동네 개원의로 10년. 조금 특이한 경력을 가지고 있는 저자가 페이스 북을 통해 남긴 흩어지는 순간에 대한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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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김용주오빠가 하는 <책의 쓸모>라고 하는 독서모임에서 선정한 책이다.

10년을 응급의학과로 10년 시골 개원의로 지내는 시크한그의 말투는 나와 너무나 비슷해서 '아니 이건 완전 난데..'할 정도였다. 에피소드들로 구성된 이야기는 너무나 소소해서 이게 책으로 나올 일인가 싶을 정도라고 저자도 말하고 있다.

소소한데 뭔가 성찰이 대단하다. 나도 수술실에서 마취간호사로 4년여 시간을 보내고 여기 여중생들을 보건실에서 보내는 시간들이 저자랑 히스토리와 분위기도 비슷해서 진짜 공감하면서 읽었다.

의학적으로 큰 병은 아니라서 분초를 다투는 결정을 내리는 일이 아니라 정말 슬로우 비디오 처럼 흘러가는 여러가지 대화의 방식들은 여기 여중생과 실갱이하는 내 보건실과 너무 닮아 있었다. 처음에 여기 여중 보건실로 와서 참 적응이 쉽지 않았던 시기의 내 자괴감들도 저자가 아는 것 같았다. 보면서 좋았던 부분을 옮겨 적어 보면서 내가 하는 다짐은 이 저자 처럼 낮에 쓰는 일기를 나도 써보리라 하는 것이다. 나는 글쓰는 것을 좋아한다. 일상의 작은 일들 속에서 찾아내는 보물같은 성찰들을 찾아가는 글쓰기를 나도 해보리라. 그리고 사람을 만나는 (저자는 할머니를 만나지만 나는 여중생을 만남) 일상은 막상 적어보면 재미있고 이야기가 말하려고 하는바가 종종 있기 마련이다.

 

"할매"

"왜"

"괜찮아, 안죽어요"

" 다죽어 사람은"

이 에피소드를 생각하니 떠오르는 내 에피소드도 있다. 나도 이 이야기를 즐겨 했다. 여중에 처음 와서 그 얘길 농담처럼 하다가 그 아이가 사색이 되어 엄마한테 일러서 학부모 대토론회 때 이야기가 나왔다는 이야길 전해들은적이 있다. 그 다음부터 그런 농담을 하지 않는다. 맞다. 다죽는다 사람은

P34. 만날 죽겠단 소리를 입에 달고 살면서도 여전히 고된 밭일을 척척 해내는 나의 튼튼한 선생님들에게 죽임이라는 마지막 밥상이 조금만 더 천천히 그리고 친절하게 배달되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환자에게 선생님이라고, 그리고 친절하게 배달되길 죽음을 ... 그리 비유한 그 비유에 무릎을 탁친다)

P. 62 하지만 어느덧 살아온 날 보다 살아갈 날이 너무도 적은 그들에게 내게는 당연한 '다음의 만남'이 당연하지 않을 수도 있는 그들에게 '오래 살라'는 인사는 거창한 소원이나 기도라기보다 그저 '내일 또 만나요'와 같은 평범한 진짜 인사인지도 모른다. 나는 그렇게 마음속으로 '오래 살어!'라는 인사를 몇번이나 되뇌어 본다. 어, 나쁘지 않은데, 이거!

P. 88 현대의학으로 할 수 있는 최선의 처방도, 비타민이 가득한 수액도 착한 아들과의 수십 년 추억이 주는 위로에 비할 바가 아닐 것이다. 어쩌면 '치료'라고 부르는 나의 어쭙잖은 개입은 해도 그만 안해도 그만인 형식적인 일일지도 모른다.

P. 108 나는 아직 나쁜 의사지만 그래도 어제보다 오늘 조금 덜 나쁜 의사가 되고 싶고, 또 그렇게 되려고 노력할 것이다. 평생이 걸리는 아주 긴 숙제일지라도 나는 그 숙제를 감사한 마음으로 해 볼 생각이다. 이게 나에게 주어진 행복한 미션이라 믿으면서 말이다.

P. 114 진심 에피소드는 너무나 좋았다. 나도 병원의 수술실에 있다가 학교로 왔을 때 그 적응은 쉽지 않았다. 모든 환자의 주 호소는 너무나 턱없이  징징댐으로 느껴졌다. 뭐 이딴 걸로 병원에 올까 했던 '허접한 증상'을 마치 큰병이라도 걸린 것 마냥 호들갑떠는 환자들도 싫었고, 응급실에 가라고 소리를 질러도 말귀를 못 알아듣는 귀 어두운 노인네들도 싫었다. 나는 생전 처음으로 극심한 위염에 시달렸고, 응급실에서 교대 근무를 할 때도 경험하지 못했던 불면증으로 밤을 지새웠다. 나는 점점 더 예민해졌고 어두워졌다. 어쩌면 그 때의 나는 바뀐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허우적거리는 지질한 내 모습에서 비롯된 피해의식과 불안을 나를 제외한 주변 사람에게 투사하며,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을 소모적인 싸움을 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아이고 원장님, 사람 하나 살린다 생각하고 좀 해줘" "아이고, 내가 이 병원 없으면 어뜨케 살어." 심장이 멈추고 의식이 사라진 환자를 원래대로 돌리는 것만이 사람 살리는 일의 전부가 아님을, 그리고 너무나 재미없고 심심해서 속 쓰림과 불면증을 가져다 주었던 나의 일상이 결국 나를 지켜주고 있음을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조금씩 깨달아가고 있다. 오늘도 나와 나의 사람들은 결국 살아있으므로 만들수 있는 끝없는 일상 속에서 그렇게 서로를 살려내며 함께 살아가고 있다.

P. 이제 더 이상 그런 급박하고 괴로운 일들과 마주하지 않아도 되는 조그만 동네 의원의 진료실로 옮겨 온 나는 그 고통으로 부터 완벽하게 도망쳤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인지하지 못했을 뿐 나는 여전히 죽음과 마주하고 있었다.매일 죽음을 목격하던 곳에서 조금 벗어나 있을 뿐 여전히 내 사람들은 죽고, 살아나고 떠나고 남겨 지고 있었다. 언제나 그렇듯 삶과 죽음은 험악하고 치열하게 진행되고 있지만 그런 사실을 외면한 채 나 홀로 무뎌지고 있는 건지, 아니 무뎌지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이전과 너무나도 달라진 모습으로 다가오는 죽음의 형태가 이토록 당황스러운 것을 보면....

P. 138 '당신 덕분에 참 즐겁고 행복하게 잘 살았어요'라고 말해줄 사람이 곁에 단 한명이라도 있다면 그것이 100세 넘게 장수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아니 지금 당장 죽어도 여한이 없을만큼 가치 않는 삶이 아니겠는가.

P. 153 "웬일이랴" "안하든짓 하믄 디진댜" 아 그 할매 참! 안하든짓 하고 하게 만들고 말이야.

P. 194 "아, 손하고 손목은 서비스예요. 명절이니까"

P.209 "근데 원장님은 하고 싶던 일인가요? 지금 하시는 일이?"  "이건 진짜 고급 정보인다... 알려줄까 그 비결이 뭔지?"

"지금 내가 하는 일이 원래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이었다고 스스로를 세뇌하면 끝!"

실현 불가능한 그림 하나를 머릿속에 그려놓고 그 그림을 손에 넣지 못해 불행하다는 생각으로 사는게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다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그림을 '내가 하고 싶은일'과 혼동하는 것은 너무나 흔한 일이다. 나도 가끔 그러니까. 내가 할 수 있는 일들 가운데 조금 욕심을 내어 노력하거나 공부하면 따라잡을 수 있는 범위 내의 무언가 중 끌리고 즐거운 그것, 그래서 선택 가능한 다른 옵션보다 나를 조금이라도 더 행복하게 해줄수 있을 그것! 그것만 잘 선택해도 충분히 훌륭하지 않은가 말이다.

"그럼 하고 싶은 일도 상황에 따라 계속 달라지겠네요?" "그게 포인트지 시간이 갈수록 나이가 들고 상황도 달라지는데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을 그것에 연동하지 않고 고정해버리면, 현실과 점점 더 멀어지는 공상이 되어버리거든. 정말 중요한 것은 하고 싶은 뭔가가 변하냐 변하지 않느냐하는 것보다, 매일 매 순간 '내가 진짜로 원하는게 뭔가' 라는 ㅈ리문을 잊지 않고 계속 고민하는 습관이 아닐까 싶어"

P. 244 "알지도 못하는 내가 걱정해서 뭐해. 원장님이 어련히 알아서 하시려고."  그런데 말이다. 동일한 액수의 돈은 받지만 누군가에게는 그저 어떻게 하면 꼬투리나 잡히지 않을까 고민하게 되고, 누군가에게는 어떻게 하면 좀 더 좋아지게 만들수 있을까 끊임없이 곰니하게 된다. 같은 돈을 내고 누군가는 그저 꼬투리를 못 잡을 정도의 서비스만 제공 받고, 누군가는 무지막지한 고민과 노력의 결과물에다 추가로 그 분야의 전문지식과 함께 애정을 받는다. 소비자가 같은 비용을 지불하고 더 나은 서비스를 받는 비결은 '전문가인 당신이 알아서 어련히 잘 하겠느냐'는 믿음을 갖아한 압박일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저 할배는 아기곰 마스크를 쓰고 착하게 웃는 여우가 아닐까 싶다. 서비스 제공자를 무언으로 압박하여 최상의 서비스를 받아내는 현명한 여우~~~~ 그런 여우라면 나는 언제든 환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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