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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좋은교사

회색빛에서 다양한 색채로.... (2023년 4월 교생L의 교생일기)

by letter79 2023. 12. 21.

그녀는 14년전 보건실 단골이었다. 심한 우울증으로 입퇴원을 반복하며 학교에 와서는 주로 잠을 잤던 기억이다. 


14년전에 그 기억만 있으면 잊었을텐데 다른 기억 하나가 우리를 더욱 돈독하게 했다. 그녀는 성악을 하고 싶어했는데 어떤 무대에서 곡을 발표하는 그런 자리에 부모님이 못오신다며 서운해 하길래 내가 꽃들고 갔었다. 그때 슬아도 같이 가주었는데 싸이 일기장에 ‘내 눈에 너만 보여’ 라는 제목으로 쓴 일기도 떠오른다. 그 후로 졸업하고도 매년 자주 왔었다. 그러나 뜸 해진건 5년 전이다. 그런데 그녀가 우리학교 교생으로 왔다. 

건강하게 잘 자라주어 고맙다고 말했다. 왜 교사를? 하고 내가 다시 묻자 그녀는 본인의 학창시절 학폭 피해 경험때문이라 했다. 상처 입은 치유자로 교사의 자리에 서고 싶은 모양이다. 귀하다. 

둘이 울었다. 기쁨의 눈물 고마운 눈물. 그 때의 온기가 기억나는 눈물이다. (23.4월)


그리고 나서 8개월이 지났다 그녀에게 학창시절 가장 힘든 시기에 다녔던 그 중학교에 다시 교생실습을 와서 어땠는지 그 마음을 적어보라고 했더니 8개월만에 그글을 보여주고 싶다고 학교로 찾아왔다. 그녀의 글은 귀하고 또 귀하다.

2023년 올 한해 가장 행복했던 한 달을 고르라면 
일초의 망설임도 없이 교생기간이라고 할 수 있다.
중학교 시절에 대한 기억은 온통 회색빛이었다
친구들의 얼굴도, 친구들과의 추억도, 매일 등교길에 마주하는 학교 풍경, 나의 감정까지도..
나를 비롯한 부모님, 선생님들, 의사선생님까지 상황을 바꾸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주셨지만 쉽게 나아지지 못했고 3년간 어떤 색을 칠해도 회색을 유지한  채 계속 버둥거렸다. 그 기억 때문일까, 이후에도 학교라는 공간에 쉽게 정을 붙이지 못하고 항상 주변을 맴도는 생활을 지속했었다. 그러한 시간 속에서 학교라는 공간은 두려움으로 자리잡았고 기억 속 색깔 또한 영원히 바꾸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굳건하고 공고히 자리잡은 그 생각은 이번 교생실습을 통해 바뀌었다.  봄날의 햇살같은 아이들과 만나며 상호작용하고 바른 길로 이끌어주시고자 노력하신 선생님들과 생활하며,  내 기억 속 학교는 한 가지의 색깔이 아닌 싱그러운 나무의 초록색, 말간 구름과 파란 하늘, 각 반의 개성이 돋보이는 교실, 학교 건물에 칠해진 알록달록한 색깔, 맛있는 밥내음, 해맑은 아이들의 미소, 시끌벅적 왁자지껄한 소리까지..!! 다양한 색채와 소리로 다시 칠해지고 있었고 그 덕에 기억 속 나는 조금이나마 웃음을 찾고, 학교에 대한 기억이 수정되고있었다.  아이들이 나와 같은 색채를 갖지 않게 하고자 신경써서 보게되고, 나로 인해 학교에 대한 기억을 조금이라도 밝게 만들어주고 싶어 부단히 애를썼다. 
학교 현장에서 만난 첫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기억 속 학교의 색깔을 바꾸는데 큰 역할을 해주어 너무 고마워. 너희들이 아니었다면 색깔을 바꾸기 어려웠을거야.  예비교사로서 너희들을 만나면서 어린시절도 반성하고, 나를 위해 애써주신 선생님들의 노고를 조금이나마 더 헤아리고 마음껏 감사할 수 있었어. 괜찮은 사람이 되고 싶게 만들고 행복한 기운을 전달하고자 하는 사람으로 만들어주어 고마워!! 교사로서 너희에게 전달한 것보다 크고 귀중한걸 얻어가는 것 같아. 내 기억을 다양한 색과 아름다운 소리로 바꿔준 우리 1-1반🌷 선생님의 첫 제자가 되어주어, 큰 가르침을 주어 너무 감사하고 사랑해😍 아름다운 색깔과 행복한 소리들로 너희들만의 예쁜 중학교 시절을 만들어가면 좋겠어:) 너희들이 걸어갈 모든 걸음걸음에 밝은 빛만이 가득하길 바랄게
그리고 한달 간 든든한 나무처럼 나를 받쳐주었던 우리 교생쌤들!! 그대들이 있어 당황스럽고 좌절을 경험하게 되는 순간에도 다시 일어나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어요. 교생실습을 통해 아이들을 만난것도 행복했지만 같이 나아갈 좋은 사람들을 만난게 더 행운인 것 같아요! 선생님들 덕분에 많이 보고 배우며 성장할 수 있었어요~ 모두들 원하는 바 꼭! 이루었으면 좋겠습니다 너무 사랑합니다😝

 
글을 모두 읽고나서 나에게 어땠는지 듣고 싶어하며 꽃과 쿠키를 들고 왔다. 그녀와 또 만나서 밥먹고 이야기를 더 할 생각이다. 내가 14년전에 누워있는 그아이를 보면서 '핑' 하고 기도를 모아 올린 것이 '퐁'하고 이렇게 나에게 꽃과 쿠키와 편지글로 온 것이다. 이 얼마나 드문일인가... 대부분은 핑은 그냥 핑~~ 하고 끝나는데 말이다. 나는 핑퐁 안된다고 자주 주눅들고 자괴감에 빠지는 사람이다. 그래도 어제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냥 계속 핑~~ 하고 보내면 된다. 퐁은 이렇게 14년뒤에 운좋게 올수도 있고 안 올가능성은 태반이다. 나는 계속 핑~~~ 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