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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노트/끄적끄적

미움받을 용기에 대하여

by letter79 2023. 7. 11.

아들러 심리학에 기초했다는 초대박 베스트셀러 '미움받을 용기'라는 책을 누구 기다리다가 대충 읽어본 기억이 난다. 미움받을 용기라는 단어를 떠올리면서 오늘 내 설을 풀어보려고 한다.

나는 '미움받을용기' 실전편에 대해 말하고 싶다. 나는 직장에서 꽤 오랜 시간 미움을 받아온 사람인데 미움받을 용기를 단전에서부터 끌어올리면서 사는 것이 얼마나 처절한 고통인지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한다.

직장에서 나를 무척이나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 이 사실은 꽤 오래 전에도 알았고 뭐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나를 싫어하는 사람은 있게 마련이니까. 나와 함께 있는 사람 10명 중에 7명은 무관심하고 2명은 나를 싫어하고 1명은 나를 좋아한다는 7:2:1법칙도 있으니 2명이 아니라 티나게 나를 싫어하는 1명이 있는 건 선빵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문제는 싫어하는 걸 어떻게 티를 내고 얼마나 에너지를 들여서 그 대상을 골려먹느냐에 달려있다고 볼 수 있는데 내 경우에 대해 살펴보자면 꽤나 힘들게 하는 편이었다. 그동안 맘고생을 많이 했다. 에피소드는 너무 많아서 관련된 스크롤 압박 글이 총 6편까지 나왔다. 매 글마다 눈물 바다에 불면의 밤도 있었다. 기도제목에 꽤 오래 내기도 했었고 속한 공동체에서 내 편을 들어줄것 같은 사람을 만나면 나는 이 썰을 풀어가면서 이 무게를 견뎌오고 있었다.

상대는 이런 스타일이었다. 미움의 대상에 대해 손절하는 스타일에 뒤에서 말을 하며 조정하는 스타일이었다. 그의 미움에는 꽤 내 지분도 있기 마련인데 그 지분이 좀 애매하긴하다. 전지적 작가 시점에서 보면 80%정도의 정확한 팩트적인 오해와 10%정도의 그 사람 틀에 내가 안 맞는 부분과 10%의 내 실수가 있다. 에피소드들이 너무 많은데 얼마 전에 또 다시 나를 찾아와서 쏟아낸 불만을 들어보면 전혀 몰랐던 에피소드이 참으로 무궁 무진하다. 2년 정도를 손절하다가 나를 지난주 찾아와서 어디서 무슨 얘길 들었는지 부들부들 분노에 찬 목소리와 눈으로 분노를 직접 나에게 쏟아내었다. 나는 그 분노가 무서웠지만 손절하지 않고 나를 찾아와서 이야기해주어서 답답하지 않았다. 무섭지만 연결된 느낌에 나는 그에게 고맙다고 했다. 내가 변해야 할 부분은 계속 변할 수 있다고 앞으로 잘 지내 보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억울함과 그의 오해를 하나하나 바로 잡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았으나 미움의 힘이 너무 컸다. 잠시 그 미움의 힘에 오래동안 갇혀서 살던 그의 무게도 느껴졌다. 미워하느라 얼마나 고생이 많았겠는가... 그가 불쌍해졌지만 막상 쏟아내는 분노에 몸은 부들부들 떨렸고 숨을 편하게 쉬기는 어려웠다.

2-3년 동안 나는 꽤나 내가 그 미움의 지분 10%를 담당하고 있는 것에 대해 자기검열을 반복해서 해왔다. 친구에게 말할 때는 욕하긴 했지만 가만히 혼자 있을 때 그 사람의 미움을 떠올릴때면 '내가 좀 부족하긴 하지.. 내가 좀 눈치가 없지.. 내가 좀 사회적기술이 부족하지... 내가 좀 두서가 없지.. 내가 좀 급하지' 하면서 그 사람의 미움을 은근 슬쩍 내탓으로 돌려가며 반복해서 주눅도 들어보고 자기 반성도 많이 해봤다. 미움의 대상이 된다는 것과 그 대상인 내가 그 미워하는 사람보다 힘이 없다는 두 가지 사실이 끊임없이 나를 슬프게 했다. 쿨한 척하면서 7대2대1법칙을 떠올려가며 큰 소리쳤지만 사람이 사람을 미워하는 것의 힘이 얼마나 큰 지를 매 순간 느끼고 살았다.

미움을 받는 것은 진짜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실전편에서 나는 그걸 깨달았다. 미움을 받다 보면 사실 정당하지 않은 미움에 대해 억울하기도 하고 바로잡고 싶기도 하다. 그리고 '그건 아닙니다 잘못 알고 계신것 같습니다' 라고 쿨하게 말하고 툭 털어내는 손절 형태의 조언도 주위에서 많이 하시던데 20-30년을 약 30명의 동료들과 쭉 같이가는 폐쇄적인 집단에서는 쉽지 않다. 그리고 특히 인생에서 내쪽에서 손절해본적 없던 나에게는 쉽지 않았다. 타고난 기질도 한 몫했다. 참 어려웠다. 미움받지 않기 위해 엄청 노력했는데 결국 잘 안되어서 용기를 내야했다. 미움은 그냥 받아야할때도 있는 것이었다.

나는 얼마 전 그와의 대화를 통해 그의 미움이 투사의 일종 인 것을 확실히 알았다. 그가 그린 투사의 그림에 내가 들어간 것인데 그건 누구든 살다보면 그 그림에 들어갈 수있다. 나도 내 아들에게 얼마나 자주 투사해왔던가... 그에게서 나는 나를 발견한다. 그의 미움 안에 나도 있다. 나도 그렇게 미워해보기도 했고 그 미움을 약하고 만만한 대상에게 투사하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힘들지만 배웠다. 미움받을 용기를 이제 제대로 배웠으니 미움을 투사가 아닌 건강한 에너지로 바꾸는 용기도 배우려고 한다. 그리고 제대로 미워할 용기를 내서 그를 미워해보려고 한다. 하지만 그에게서 내가 발견되었으니 미움도 쉽지 않다. 떠올리면 억울해서 운전대 붙잡고 울컥거리는 마음으로 울어보다가 문득 인류애가 조금씩 느껴지고 있다. 이런 마음은 제대로 미움 받아 본 사람만 알 것이다. 오랫동안 미움받아서 맘고생 한사람들이랑 밤새 이야기하고 공감받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