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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영화, 음악 이야기

지켜야 할 세계/문경민/2024

by letter79 2024. 4. 16.

https://www.aladin.co.kr/m/mproduct.aspx?ItemId=326118200

 

(2024년 기윤실교사모임 꿈섬2.0 5기 과제)
무엇을 지키려고 학교에 갈까
? 라는 주제로 서평

 

감정마저 뭉툭해져서 이제는 외로움에 어쩔 줄 몰라하던 일이 오래전 추억 같았다. 자신을 동여매고 있던 감정의 매듭들이 헐거워진 게 나쁘지 않았지만 살을 파고들던 서릿발 같은 마음들이 때때로 그립기도 했다.

이 문장은 중년의 교사가 되어 뭉툭해져버린 나에게, 스물여섯 첫 학교에서의 외로움과 동여맨 감정들을 생각나게 했다. 실은 나에게 처음 직장은 병원이었다. 그냥 간호사로 살 수도 있었다. 그런데 나는 주일날 반주를 하다가 피아노에 비친 교회 고등부 아이들의 눈에 반했다. 그리고 그 눈을 더 반짝 거리게 해주고 싶은 마음 같은 것이 생겼다. 병원 오프날 교회에서 만나는 우리반 애들을 일대일로 만나고 돈을 모조리 쏟아 부었다. 그리곤 38개월을 간호사를 하며 곁눈질 해온 노량진으로 갔었다. 눈을 더 반짝 거리게 하는 힘이 나에게 있을 것 같았고 그 눈망울을 지키고 싶어서 학교로 갔다. 그 학교는 간호학과를 나온 내가 담임을 할 수도 있고 수업도 원없이 할 수 있는 전문계고등학교였다. 돌아보면 무척이나 비정규직에게 무례한 학교였지만 살을 파고들던 서릿발 같은 마음들이 나에게는 있었다. 그래서 좋은교사에서 배운 학급운영이랑 상담이랑 수업을 해볼 수 있었다. 하지만 날을 세우지 않고는 지킬 수 없는 세계였다. 학교에서 지켜본 사학 비리에 각자의 날을 세우시는 선생님들이 있었다. 기윤실교사모임의 임O, O, O호 같은 사람들이 그랬다. 그들을 보면서 마음이 이상하게 서늘해졌다.

 

윤옥은 수업은 밥같은 것이었으나 가끔은 기대하지 않았던 성찬을 마주 하게 되는 날도 있었다고 했다. 그런 수업은 만드는 게 아니라 만나는 것이라고 그런 수업을 마주한 날이면 온종일 행복했고 오케스트라의 지휘자가 된 것 같았다.. 그 문장에 박박 줄을 그었다. 나는 이런 수업의 맛을 몇 번 보고 수업을 통해 세상을 보는 아이들의 반짝이는 그 눈을 지켜주고 싶은 교사였다. 소설 중간 교원노조와 관련된 문교부 공문에 나온 조심해야할 선생님이랑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학생들에게 인기 많은 교사, 자기 자리 청소를 잘하는 교사, 촌지를 거부하는 교사, 학급 문집을 내는 교사,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과 상담을 많이 하는 교사, 학부모 상담을 자주하는 교사, 사고 친 학생의 정학이나 퇴학을 반대하는 교사, 교장을 보면 인사하지 않고 피하는 교사(! 내가 그래서 첫 번째 기간제 학교에서 눈 밖에 났었다), 학생의 자율성, 창의성을 높이려는 교사, 지나치게 열심히 가르치려는 교사말이다. 어쩌다 진짜 교육은 공안 몰이의 먹잇감이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그 시기를 지나온 선배들에게 고맙다. 진심으로 고맙다. 그들이 지켜야 할 세계라고 생각한 것이 어쩌면 내가 생각한 것과 다를 수는 있지만 가슴 깊이 우러나오는 존경심이 있다.

 

소설에서 엄마와 윤옥은 각기 자기 배로 낳지 않은 누군가를 돌보는 삶을 결정한다. 생의 의지와 죄의식과 성화를 꼭짓점으로 둔 삼각 공간 어딘 가를 영혼이 더듬고 있다는 표현에 밑줄을 그었다. 처음부터 지켜야하겠다고 의지적으로 다짐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돌보고 가르치면서 아이들에게 받는 신뢰와 사랑이 있다. 윤옥이 상현을 돌보면서 얻었던 작고 단단한 바위 같은 신뢰와 사랑이자 온전히 나만이 얻을 수 있는 사랑이랑 비슷하지 않을까. 허나 설핏 길을 잘못들면 나는 소설 속의 정훈이 될 수 있는 사람이다. 정훈도 처음에는 날을 세우면서 지키려고 했던 세계가 있었고 윤옥이 만난 학교의 선생님들도 윤옥을 보면서 부끄러워했던 마음 말이다. 다들 사느라 그랬던 것이고 그렇게 큰 욕심을 부리지 않았지만 지키지 못하고 스스로가 부끄러워 울분에 찼던 조성탁 주임과 교감과 같은 사람은 나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윤옥의 엄마가 생의 의지죄의식성화를 꼭짓점으로 둔 삼각 공간 어딘가를 영혼이 더듬고 있듯이 나도 더듬어 보고 싶다. 정현종의 방문객에서 말한 아마 바람은 더듬어 볼 수 있는 그런 마음 비슷한 것 아닐까 싶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아이들의 반짝거리는 눈망울을 지키러 나는 학교에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