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 영화, 음악 이야기

아직도 가야할길 3번째 독서모임

by letter79 2024. 1. 28.

한달간 연초 사역들 때문에 여말몸글 독서모임이 잠시 쉬고 다시 모였다.
아직도 가야할 길 3번째 네챕터를 읽고 모였다. 챕터의 제목은 이러하다.
- 사랑은 자기 희생이 아니다
-사랑은 느낌이 아니다
-관심을 행동으로 나타내는 것이 사랑이다
-사랑이라는 모험:독립
 
[사랑은 자기 희생이 아니다]

적절한 때에 주지 않는 것이 적절치 않은 때에 주는 것 보다 더 인정을 베푸는 것이라는 점을 배워야 했다. 또한 스스로 돌볼 능력이 있는 사람을 돌보기 보다는 독립심을 길러주는 것이 오히려 사랑이라는 사실도 배워야 했다. 또한 자신의 욕구와 화나는 이유 그리고 분노와 기대치를 표현하는 것은 자기 희생과 마찬가지로 가족의 정신 건강에 꼭 필요하며, 감싸주고 자기 감정을 숨기는 것만큼 솔직하게 감정을 표현하는 것도 사랑에는 포함된다는 것도 배워야 했다. (p.161)
다른 사람을 위해 뭔가를 한다고 생각할 때마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는 자신의 책임을 거부하고 있다. 그것이 무엇이든 무언가를 할 때에는 그것을 하기로 선택했기 때문이고, 그것이 우리를 가장 만족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무엇이든 다른 사람을 위해 한다 해도 사실은 우리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행위다. (중략) 순수하게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의 기쁨을 안다. 순수하게 사랑하는 순간의 이유는 우리가 사랑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p.165)
사랑과 사랑이 아닌 것을 구별하는 것은 이기적인가 아닌가가 아니다. 그 구별의 행동의 목적이 무엇인가이다. 진정한 사랑의 경우 그 목적은 항상 영적 성장이고, 사랑이 아닌 경우에는 그 목적이 항상 다른 것에 있다.(p.166)

 사랑과 사랑이 아닌 것을 구별하기란 쉽지 않다. 타고난 적극성과 누군가에게 기여하고 싶은 욕구를 가지고 태어난 나는 가끔 헷갈린다. 나는 희생을 공동체에서 보이는 것이 그다지 어렵지 않은 기질을 타고 태어난 것 같다. 그래서 착각한다. 가족이나 공동체 속에서 내가 보이는 적극적 희생의 모습은 사랑에 기인한 것이라고.. 하지만 이기적이지 않은것이 사랑은 아니다.
이 한문장이 나를 멈추게 한다.

한편으로 독립심을 키우기 위해서 적절한때에 필요를 채워 주지 않고 나의 욕구와 분노의 이유와 기대치를 표현하는 것은 희생과 마찬가지로 가족의 정신건강에 꼭 필요하다는 말이 나에게 큰 위로가 된다. 나는 종종 아들의 필요를 채워주지 못한다. 덤벙거리기도 하고 바쁘기도 하고 말이다.  나는 욕구불만을 주로 짜증과 분노로 표현한다. 솔직하게 감정을 표현하는 것도 사랑에 포함된다고 하는 부분에 깊은 위로를 받았다. 나의 분노 표출에 대한 자기 합리화 문장을 발견한 셈이다. 
자기합리화인지 아닌지는 건강한 분노와 필요한 기대치를 표현하는 그 순간 내 안에 들리는 소리로 구분할 수있을 것이다.
아들에게 소리를 하루에 한번이상 지르게 되는 방학이 되었다. 방학때 아침마다 ‘오늘은 언성을 높이지 말아야지. 우아하게 아들에게 말해야지‘ 하지만 오전이 지나기 전에 데시벨은 올라간다. 전에는 언성을 높이고 난 내 자신이 너무 부끄러워서 자괴감에 빠져서 헤어나오는데 시간이 무진장 걸렸다. 속터지는 남편을 만나서 그의 무관심에 다시 한번 마음을 찢어가면서 살아왔었던 것 같다. 오늘 이 문장을 통해 나의 분노표출이 가족의 정신건강에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큰 위로가 된다. 모든 순간은 아니지만 가끔은 나는 잘 하고 있다. 그것도 사랑이 맞으니까 말이다. 늘 망친것은 아니다.
 
[사랑은 느낌이 아니다]

- 사랑은 자신이나 타인의 영적 성장을 도와줄 목적으로 자신을 확대시키려는 '의지' 다.
- 사랑의 느낌에는 제한이 없지만 사랑할 수 있는 능력에는 한계가 있다. (p.170)

느낌이 아닌 건 중년이 되서 알겠다. 그래서 이제는 한계를 들여다보고 나를 확대시키려는 의지를 어느 방향으로 사용할지를 결정해야한다.

[관심을 행동으로 나타내는 것이 사랑]

관심을 행동으로 나타낼 수 있는 가장 평범하고 중요한 방법은 말을 들어주는 것이다. (p.173)
이렇게 돌보는 모든 형태의 공통점은 이야기를 듣는 것과 마찬가지로 아이와 시간을 함께 보낸다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관심을 갖는다는 것은 시간을 함께 보낸다는 말이다. 관심의 질은 함께 있는 동안 얼마나 집중했는가에 비례한다.

이 텍스트를 보면서 떠오른 사람은 남편이다. 남편은 말도 행동도 거의 안하는데 그냥 말을 잘 들어주고 시간을 함께 보내고 잘 놀아준다. (물론 아이랑 말이다) 집중하고 있는지 나를 사랑하고 있는지는 전혀 검증은 할 수 없지만 확실한 것은 많은 시간 듣고 시간을 함께 보낸다는 것이다. 어쩌면 남편은 내 생각보다 괜찮은 사람일 수 도 있다.

 

[사랑이라는 모험 : 상실] 

사랑을 시작하기 위해서는 애착이 필요하다. 우리는 무엇인가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만을 사랑한다. 그러나 애착에는 항상 잃거나 거부당할 위험도 있다. 애착의 대가는 고통이다.(중략) 어떤 차원으로든 앞으로 나아가서나 성장하면 기쁨과 함께 고통이라는 대가를 치를 것이다. 충만한 삶은 고통으로 충만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삶을 충만하게 살든지 아니면 완전히 포기하든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을 뿐이다.(p.191)
죽음이란 언제나 곁에 있는, 우리의 '왼쪽 어깨'에 짊어지고 가는 것임을 느끼고 산다면, 돈 후안의 표현대로 죽음은 '동지'기 될 수 있다. 두렵기는 하지만 지혜로운 교훈의 원천이 되어줄 것이다. 죽음의 교훈을, 즉 살고 사랑할 시간이 제한되어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둔다면 시간을 최선으로 이용하고 최대한 충만한 삶을 살려고 노력할 것이다. 그러나 왼쪽 어깨에 짊어진 죽음이라는 두려운 존재와 당당히 직면할 마음이 없다면 죽음이 주는 지혜로운 교훈을 스스로 버린 결과, 명쾌하게 살거나 명쾌하게 사랑할 수 없다. 죽음이라는, 항상 변화하는 삶의 본질을 피하면, 어쩔수 없이 삶도 피해버리게 된다.(p.192)

누군가를 사랑하다 헤어져서 다시는 사랑같은 걸 안하겠다는 유행가 가사가 얼마나 많은지 모르겠다. 순정만화와 유행가의 대부분의 내용이 그런 내용이다. 애착을 형성하게 된 그 혹은 그녀와 어떤 사유로든 거부당하거나 잃어벌린 경우 그 대가로 고통은 어머어마 하다. 밥이 안넘어가고 잠이 안오는 그 고통 그자체의 감각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어떤 차원으로든 성장하면 기쁨과 함께 고통이라는 대가를 치르게 된다. 충만한 삶은 고통으로도 충만해진다. 충만하게 살든지 완전히 포기하든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한다면 나는 용기있고 호기롭게 충만한 삶을 선택하고 싶다.

죽음이라는 주제도 마찬가지다. 죽음은 동기도 될 수 있다는데 동의 한다. 살고 사랑할 시간이 제한이 되어 있다는 사실이 훅 나를 스치고 지나갈 때가 있다. 그것은 누군가의 죽음의 소식 때문에 들기도 하고 아주 기쁜 순간에도 찾아오는 깨달음이다. 시간을 최선으로 이용하고 최대한 충만한 살려고 노력한다는 것은 왼쪽 어깨에 죽음이라는 존재를 당당히 직면한다는 이야기 일것이다. 죽음이라는 존재를 당당히 직면 하는것이 과연 인간으로 가능한 일인지는 저자는 아직 모르는것같다. 후에 그가 불교도가 아니라 예수를 만난 이후에 이 글을 어떻게 바라볼지 궁금하기도 하다. 죽음 앞에 사랑이라는 주제는 정말 지혜로운 교훈의 원천이 된다고 느낀다. 오늘도 왼쪽 어깨에 죽음을 짊어지고 나는 제한된 시간에 사랑을 결심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