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일대일결연
오늘은 매달 만나는 그 아이랑 만나는 날이다. 여길 졸업하고 고등학교를 갔는데 학기 중엔 나도 그 아이도 바빠서 여유롭게 만나진 못한다. 퇴근하고 5시에 만나서 우리는 7시 전에 헤어졌다.
중학교 2학년때 시작한 인연인데 이렇게 오래 결연 하게 될 줄은 몰랐다. 원래 그해 맘쓰이는 아이 일대일 결연하는 게 좋은 교사 실천 운동이라 계속 바뀌는 게 맞다. 허나 이 아이는 좀 더 오래 만날 수 있게 하늘이 도왔다. 좋은 교사 이랜드 협약으로 다문화 케이스에 선정이 되었다.
올해는 감사일기를 일주일에 두번 쓰고 만날때 가지고 와서 서로 바꿔읽는 것도 만남의 전통으로 집어 넣었다. 그 아이는 내 일기를 궁금해하지 않지만 나는 그녀의 감사일기가 궁금하다.
오늘 들은 이야기는 다 좋지않은 소식이었다. 뇌졸증이면서 알콜중독인 아버지는 잠시 금주를 하셨지만 이내 다시 술을 하루에 3병 정도 마신다고 한다. 다문화 가족인 그 아이의 엄마는 여전히 지방에서 숙식을 제공하는 조건으로 일을 하고 있어서 주말에만 오신다. 전문계고를 갔는데 학급에서의 갈등으로 학폭에 연류되어 무척이나 마음 고생을 하는 모양이다. 동성의 친구와 만나는 것을 좋아하는 그 아이는 나만의 애인은 만드는 것에 실패한 시간을 지나고 있었다. 중2때 나랑 만나게 된 원인인 칼빵습관은 다시 이어지게 되었고 얼마 전에는 잠시 옥상에 올라갔었다고 했다. 자살의도가 없는 칼빵이랑 옥상에 올라간건 사뭇 다른 이야기라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나 : "야 죽을려고 올라갔어?"
너 : "잠깐 그런 생각해서 올라갔는데 발이 안떨어졌어요. 부모님 생각하면서 울면서 내려왔어요"
들으면서 놀랐다. 아동학대로 신고까지 몇번 했던 아빠에 엄마는 먼곳에서 일하시느라 부재감이 큰데도 부모의 사랑에 멈칫했다는것에 놀랐다. 부모가 약하긴 하나 그녀에게 큰 지지가 되는 존재구나 생각하니까 안심이 되었다. 기능적으로는 어떨지는 모르지만 그 아이는 양가 부모님이 살아계시고 함께 하는 시간이 있다. 잠시 그분들의 존재를 살짝 무시하고 있었던 내 마음에 놀랐다. 취약성이 가득한 인생이지만 조잘조잘 다 이야기해주고 잔소리하면 씨익 웃고 밥을 두그릇이나 먹는 그아이다. 마냥 귀엽고 예쁜 건아니고 종종 답답한 일이 한 두번은 아니지만.. 그렇게 얘기해주고 싶다. 동백꽃 필무렵 이라는 드라마에서 고두심이 했던 명대사다.
내가 너를 아주 귀허게 귀허게만 받을께
일대일 결연은 너무 초반에 열정적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가늘고 길게 계속 만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어른친구가 되어주는 이 일이 나를 살리는 일이라고 믿는다. 혹 내 눈빛과 언어 속에 저 하늘에 계신 양반의 냄새가 좀 섞여 있어서 전해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한번도 교회가라고는 말하지 않았지만 감사일기를 쓰는 시간에 잠시라도 같이 떠올려보면 좋겠다. 차에서 내려주면서 그랬다.
"야 아직은 떨어질 때는 아니다 알지?" 씨익 웃으면서 알겠다 한다. 죽고 싶었던 순간이 있었던 걸 이야기 해줘서 고마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