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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치심 9장을 읽으면서 생각난 요즘 직장에서의 나

letter79 2021. 12. 14. 20:29

수치심 9장을 읽으면서 생각난 요즘 직장에서의 나

 

 

코로나 팬데믹 상황은 최근 위드코로나를 시작하고 상황이 좋지 않아졌다. 특히 학교에서 확진은 어마어마하게 늘어났는데 우리 학교는 2주전부터 시작해서 일주일에 열한명의 추가확진을 찍으면서 학교안에서 전파된 바이러스로 역학조사로 골머리를 앓았다. 통째로 한학년은 원격수업 전환되고 3반은 자가격리 2반은 수동감시하고 추가 검사까지 진행되었다. 나머지 두학년은 그대로 학교 수업을 진행해야했기에 보건실은 정말 업무 폭탄을 맞았고 주말이고 밤이고 낮이고 내 전화는 불이 나는 상황에 어떤 날은 보조배터리가 필요한 적도 있었다.

팬데믹 상황은 2년이 지나갔지만 바로 일상에서 눈 앞에서 벌어진 전파는 매일 아침 확진 소식으로 확인이 되어 전화벨이 울리면 또 아침이 되면 신경이 완전히 곤두서는 시간들이었다. 특히 확진 학생이 위중증으로 음압병실에 들어가서 더욱 불안은 증폭되었고 이 모든 상황들이 진행되면서 놀라운 사실은 여기저기 도사리고 있는 수치심 수행원들 때문에 멘탈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았다. 결국 한번은 여기선 처음으로 엉엉 울면서 분노를 폭팔해 보기도 했다.

문제는 1학년 부장과 일을 진행하면서 서서히 드러나게 되었다. 1학년 부장 A는 모든 일을 완벽하게 해야하고 특히 관리자의 시선에 매우 민감한 사람이었다. 이 코로나 확진이 1학년에게 1주일에 열명이 넘게 퍼졌기 때문에 학부모 대응에 있어서 최선의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그의 부장으로서의 역량을 펼치고 싶었던 것 같기도하다. A는 평교사였다가 처음으로 학년 부장이라는 부장직을 맡았고 나는 이전에는 그리고 처음에는 이 팬데믹을 잘 이겨낼 동지로 생각하고 너무나 고마워했다.

첫 갈등은 선별진료소를 3학급을 학교에서 보내야하는 상황에 발생했다. 선별진료소 1번 장소로 안내해서 아이들이 하나 둘 줄을 서서 검사를 받는데 1번 장소에서 학교 확진이면 검사를 진행하지 않는다는 황당한 대응을 했다. 나는 전혀 모르는 소식이었는데 그 때 A는 학부모에게 다른 곳으로 가야한다는 이야기를 전해야하니까 정말 짜증이 많이 났나보다. “교사로서 면이 서지 않네 선생님.. 선생님도 몰랐어?” 한숨을 푹 내쉬었다. 나는 갑자기 수치심 수행원이 하는 얘기가 내 안에 들려왔다. 선별진료소에서 학교 아이들을 받지 않는다는 사실을 몰랐다니 내 잘못은 아닌가? 그래서 선별진료소 직원이랑 한참 실갱이하고 결국 그래도 안된다는 이상한 답변을 듣고 그 많은 아이들을 비도 오고 추운날씨에 다른 곳으로 이동시켜야 했다. (사실 나중에 안 사실인데 이것은 그 기관이 잘못한 것이다.)

두 번째 갈등은 그 이후로 여러 학부모와 학생들의 다양한 질문에 대답을 해야하는 상황에 나는 사실 보건당국이 아무것도 결정하지 않은 상황에 대답을 할수 없는 입장이었는데 이번에도 A그래도 자기도 학부모잖아 부모 마음으로 불안한 마음으로 하는 문의를 다 받아야 하지 않을까? 앞으로 진행되는 역학조사 과정도 설명하고 선별진료소가서 소독시간 걸려서 얼마나 많이 기다리겠어 선별진료소 소독시간이랑 점심시간도 다 알아놓고 안내해야지.. 형제 자매들 있는 부모들이 얼마나 힘들겠어 그것도 다 안내해야지 자기도 엄만데 그 마음 알잖아~”

이렇게 말하면서 학부모이면서 엄마인 나에게 죄책감과 수치심을 자극했다. 사실 내가 할수 있는 일이나 답변은 없었다. 보건당국이 해야할 일을 내가 할 수는 없었고 선별진료소 가서 대기하는 것은 내 잘못이 아니었는데 보건소가 자가격리 통보를 늦게해도 선별진료소가서 허탕치고 왔다고 하는 그 많은 투덜댐을 내가 다 받고 미안해하고 그렇게 2주를 지냈다.

내 핸드폰 번호까지 공개해서 일상이 마비될까봐 걱정되는 부모의 불안을 달래야 했고 보건소가 빠뜨린 자가격리자를 자가격리 시키느라 매일 매일 시달렸다.

나는 그렇게 불안하고 예민한 사람들의 날선 마음을 모두다 받아내느라 시달렸는데 A는 그 모든 일을 내가 해야할 일이라고 했다. 나는 거기까지 내 영역이 아닌 것 같다고 생각했지만 A는 늘 학교의 면이 서야지.. 그리고 우리 담임들 진빠지게 애들이 자가진단 안한거 단톡방에 올리지 말아줘 우리 한테 할 얘기 있으면 한 사람 한사람한테 전달해줘 다른 사람이 보면 우리가 일안한줄 알거 아니야 우리가 얼마나 진빠지는지 알아?” “자기도 학부모잖아 학부모 마음이면 이정도는 더 안내하고 더 친절할수 있잖아 그치?” 그렇게 말했다.

한참 힘들었던 내 마음은 그렇게 수치심 수행원한테 완전히 빼앗겨 있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9장을 읽으면서 부터다.

 

p.275에 이런 대화가 나온다. “그러면 당신은요? 당신의 약한 부분을 돕는 일은 누가 하나요? 그는 아주 잠시 생각했다. ”, 물론 접니다. 저말고 누구일이겠어요? 제 회사잖아요

내가 그랬다. 똑같은 생각을 했다. 그리고선 집에와서 자녀를 돌보고 집안을 돌볼 힘은 하나도 없었다. ‘감당하기 버겁다라고 느꼈다. 낯설지만 나는 그렇게 느끼고 오늘 9장을 읽고 퇴근하고 약 30분 동안 교감선생님에게 내 마음을 이야기했다.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은 이 학교 공동체에서 고립되지 않고 조금더 창조적이 되는 것이다. 공동체의 일원이 되어 깊이 연결되고 싶다고 말했다. 그래서 내 취약성을 드러내었다. 효과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용기를 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