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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영화, 음악 이야기

하나님 앞에서 울다

by letter79 2021. 3. 24.
발췌 

 

들어가는 글

이 책은 상실을 안은 채 계속 살아가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지, 상실 속에서 살아가는 동안에도 우리 삶을 확장시키는 일이 어떻게 가능한지에 관심을 두고 있다. 상실 앞에서 여러 가지 방식으로 반응할 수 있다. 우리가 어떤 '선택'을 내리는가 하는 것도 상실에 대한 반응이고, 상실을 겪은 후 또는 상실을 겪으면서 우리가 어떤 '은혜'를 누리는가 하는 것도 상실에 대한 반응일 수 있다. 궁극적으로 상실 속에서 우리가 어떤 '변화'를 이끌어내는가 하는 것도 상실에 대한 반응에 속한다. 신속하고 고통 없는 해결책을 기대하지 말라. 대신 나는 평생 지속되는 '성장'이라는 여정으로 가는 길을 보여주고자 한다.

상실을 당했을 때 적절하게 대응하고 지혜롭게 반응한다면, 우리는 실제로 보다 건강한 사람이 될 수 있다. 육체적으로는 죽음에 가까이 간다고 하더라도, 우리의 영혼은 치유의 길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 영혼은 고통을 통해서도 치유되기 때문이다. 

1. 끝, 그리고 시작 
 저자의 경험 이야기

2. 상실을 비교할 수 있는가. 
질문은 "누구의 것이 더 나쁜가" 하는 것이 아니다. "고통에서 어떤 의미를 얻을 수 있는가, 그리고 우리가 고통을 통해 어떻게 성장할 수 있는가"

3. 어둠속으로 들어가다
우리가 이런 상실을 겪지 않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어림없는 얘기다. 나이를 먹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어쩔 수 없는 그것들을 받아들이면서 우리가 어떤 식으로 반응할지는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결정할 수 있다. 우리는 삶 속에서 우리가 어떤 역할을 맡게 될지에 대해서는 언제나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일단 주어진 역할을 어떻게 감당하느냐는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사항이다. 따라서 선택이 열쇠다. 우리는 어둠을 뒤로하고 도망칠 수도 있고, 아니면 어둠 속으로 뛰어들어가 상실에 따른 고통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우리는 자기 연민에 빠져 살 수도 있고, 아니면 다른 이들과 마음을 함께하며 그들의 고통을 나 자신의 고통처럼 보듬어줄 수도 있다. 슬픔으로부터 도망치느라 어딘가에 중독될 수도 있고, 아니면 슬픔과 벗하며 살아가는 법을 배울 수도 있다. 살아가면서 당산 기만의 상처들을 끌어안고 지낼 수도 있고 아니면 비록 그럴 이유가 없어 보인다 해도 감사하고 기뻐하며 살 수도 있다. 악으로 악을 되갚을 수도 있고 아니면 선으로 악을 이길 수 도 있다.

상실을 겪고 나면 우리가 이전보다 불행해진다는 얘기는 사실이 아니다. 상실을 겪었을 때 우리가 불행해지는가 하는 문제는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사항이기 때문이다. ... 죽음을 경험했을 때에도 우리는 삶을 찾아낼 수 있다. 오직 우리의 선택에 달렸다.

빅터 프랭클 '삶의 의미를 찾아서'

4. 소리없는 고통의 비명소리를 듣다.
5. 광막한 바다를 혼자서 항해하다 
6. 익숙한 자아와 결별하다.
7. 일상이 멈춰버리다.
8. 상실은 아무 때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9. 왜 나는 아닌가
p.170 상실은 우리에게서 통제권을 빼앗아간다. 종종 아무런 경고도 없이 암이 삶을 황폐화시키고 폭력이 삶을 뒤집어놓고 이혼이 삶을 엉망으로 만들고 실직이 삶을 좌절케 하고 죽음이 삶을 깨뜨린다. 우리는 갑작스럽게 우리의 한계에 정면으로 부딪쳐야 한다.  우리는 대체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갑작스러운 훼방과 불편함과 일탈에 분개한다. 그리고 우리는 이렇게 묻는다. " 왜 나인가?"
"왜 나는 아닌가?" 암으로 아내를 잃은 사내의 입에서 나온 질문. 그는 고통이 단지 삶의 일부라고 말했다. 그는 자신이 겪은 상실을 지구 차원의 경험이라는 측면에서 받아들인다.  대부분의 삶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지키본 이상 " 왜 나는 아닌가?"라는 질문이 좀 더 핵심에 가깝다.
p.181
결국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공평한 삶을 허락 하신다. 은혜가 머무는 세상에서 사는 일은 절대적 공정함만 있는 세상에서 사는 것보다 훨씬 낫다. 공정함만 있는 세상은 어떻게 보면 꽤 멋져 보인다. 그러나 우리가 멋지게 살아갈 때에만 멋질 뿐이다. 우리는 응당 받아야  할 것들을 받지만, 그게 얼마나 될지 의문이고 또 우리가 정말 만족하며 살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은혜가 있는 세상은 우리가 마당히 받아야 할 것을 우리에게 허락한다. 우리에게 생명을 허락할 것이며, 우리가 고통 가운데 있다 하더라도 그 사실은 변함이 없다. 

 

10. 용서하고 기억하다.
p. 정의는 항상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나쁜 사람들은 나쁜일을 하고도 잘 지낸다. 강간범들은 잡히지 않고 잡히더라도 유죄 선고를 받지 않는다. 자녀를 학대한 부모는 다시 한번 자녀를 두려움으로 입 다물게 만든다. 부정한 배우자는 이혼 후에도 행복하게 지낸다. 탐욕이 가득한 사람들은 정직한 이들을 속여 파산하게 만들고 그들의 이름에 먹칠을 한다. 삶이 공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우리는 실망을 겪는다. 사람들은 우리의 신의를 저버리고 그 대가도 치르지 않는다. 고착화된 구조는 우리를 실망시키고 우리의 개선 노력을 성공적으로 물리친다. (중략)
그렇지만 진짜 문제는 다른데 있다. 복수하려는 의도 배후에 '용서하지 않는 마음'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용서하지 않는 마음은 영혼을 질식시키는 연기처럼 우리 뱃 속에서 타오는 불꽃과도 같다. 그것은 모르는 이에 진행하는 특성이 있어서 아주 파괴적이다. (중략) 용서하지 않는 마음을 상실에 대한 강한 반응들과 혼동해서는 안된다. 용서하지 않는 마음은 분노, 슬픔 또는 정의에 대한 마음과는 다르다.  그것은 역병만큼이나 파괴적이다. 
p.203 
용서는 한순간에 이루어지 법이 거의 없다. 용서는 한 번의 행위라기보다 하나의 과정이다. "널 용서할게"라고 내뱉는 식으로 드러나는 한 번의 행위(action)가 아니라 영혼에서 벌어지는 계속적인  움직임(movement)이다. 어떤 미에서 용서는 평생 동안 지속되는 과정이다. 끔찍한 잘못을 경험한 희생자는 상실이 가지고 있는 여러 차원을 평생 동안 발견하며 살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용서는 끝이 없는지는 몰라도 시작은 분명히 있다.
11. 하나님이 침묵하시다.
12. 죽음은 최후 승자가 아니다.
13. 상처입은 공동체
14.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
15. 미래는 나에게 달렸다. 
p.287  상실을 피하는 것은 건강하지 못한 자세다. 상실이 우리를 얼마나 황폐하게 만드는지 안다면, 그걸 피한다는 생각은 현실적이지도 않다. 오히려 상실을 통해 성장하는 편이 더 수월하다. 상실 앞에서 우리는 위축될 수 있다. 또한 성장할 수 있다. 다시 말하는데, 그것은 전적으로 우리가 내리는 선택과 우리가 받는 은혜에 달려 있다. 상실은 우리를 철저하게 변화시키는 기폭제 역할을 할 수 있다. 상실은 우리를 하나님께로 이끌 수 있다. 그분이야말로 우리에게 생명을 주실 수 있는 권세를 가졌으며 또 그렇게 하기를 간절히 원하시는 유일한 분이다. 

--------------------------------------------------------------------------------------------------------------------------------2021.03.24  이 책을 왜 읽게 되었는지는 기억은 나지 않지만 참 잘 읽었다. 신앙서적 잘 안읽고 자기 생각을 나열한 에세이류도 읽지 않은지 좀 되었다. 요즘 그런 게 싫어졌다. 

이 책은 너무 힘들게 짜낸 귀한 참기름같은 귀한 향기가 난다. 경험을 통해서만 피부에 와 닿게 성찰한 내용들이 살아 움직이는 이야기로 다가왔다. 사실 쉽지 않은 소재이다. 나는 지금 큰 상실을 경험하지 않았기 때문에 저자의 말도 안 되는 상실(한순간 엄마, 아내, 딸이 모두 사고로 내 눈앞에서 죽는)을 감정을 공감하며 혹은 앞으로 곧 닥칠 나의 상실을 상상하면서 읽어야 하는 책이라 심리적 에너지는 들긴 한다. 도대체 저자는 이런 상상하기도 아니 헤아리기도 어려운 힘듦 가운데 성장을 이야기하는데 이게 말이 되는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지구 저편의 나랑 말도 안 통하는 나라에 살고 있는 저자의 마음속을 내가 들여다보고 온 기분이다. 그 마음은 얼마나 상처가 많고 아팠는지 이루 말할 수 없지만 아주 진귀한 눈부심이 있었다. 상실을 경험한 사람들이 대부분 통과하는 생각인 "왜 나야?" "누구의 상실이 더 나쁜가" 라는 생각과 그 근처를 서성이는 나 같은 사람들이 하는 생각인 "에이 설마 나한테?"라는 질문을 보다 좋은 질문으로 수정해준다. 

제일 눈에 띄였던 들었던 부분은 10장 용서에 대한 부분이었다. 한 번의 행위(action)가 아니라 영혼에서 벌어지는 계속적인  움직임(movement)이라고 용서를 정의하는 부분도 그렇고 용서하지 않는 마음이 영혼을 파괴시키는 역병과도 같다고 서술한 부분은 상실을 통과하고 있는 한 영혼의 깊은 통찰이었고 그 통찰에 대한 존경심과 감동으로 한 글자 한 글자를 읽어 내려갔다.

이 책은 언젠가 우리에게 닥칠지도 모르는 사랑하는 가족의 상실, 건강의 상실, 노출되기 쉬운 각종 사고, 배신으로 인한 관계의 상실에 대해 이야기한다. 상실 속에서 하나님이 어디에 계시는지 막 데굴데굴 굴러가면서 씨름한 저자의 통찰과 기록들이 이상하게도 그 상상하기도 싫은 상실 속에서도 한줄기 빛이 존재한다는 위안으로 마음이 평안해졌다.